오류를 창조하는 박종규의 디지털 회화

 

백 곤 |미학,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수석학예연구사

 

1. 비선형 디지털 오류의 생성

1990년대 텔레비젼은 정규방송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새벽 1시가 되면 애국가가 울리고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화면은 온통 시각화된 잡음이미지나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빈 공간을 보여주었다. 2013년 정규방송의 디지털TV 전환이 이루어지기 전인 2012년 10월 이전까지 공중파 TV는 방송통신법에 따라 24시간 방송이 금지되었었다. 바로 전파낭비 등의 이유였다. 케이블방송은 차치하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낭비되는 전파를 걱정해야했고 정규방송은 그 전파들을 통해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등 수많은 정보들을 송신하였다. 아날로그 TV 즉, 브라운관 텔레비전의 뚱뚱한 모니터는 가로의 선형적인 주파선을 쏘는 방식이었고 중앙에서 직접 통제하는 일방향의 매체였다. 이러한 아날로그 TV의 체계를 일찍부터 발견한 사람이 백남준이었다. 그는 1963년 텔레비전 수상기의 중앙통제 방식을 개인이 변경하여 가로 방향의 주파선을 세로로 변형시켜 ‘노이즈’를 그대로 표현한 TV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백남준이 위대한 이유는 한 개의 주파선으로 방출하던 TV의 주파선을 두 개로 설정하고 TV를 수평과 수직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예술캔버스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비슷한 시기 맥루한이 예견한 미래사회의 비선형적인 미디어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해 실현되었다. 비선형의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점들로 구성된 균질한 스크린을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아날로그 TV로 대변되는 방송의 송출중지, 즉 지직거림, 노이즈는 누군가에겐 잡음이었고 누군가에겐 훌륭한 예술의 소재였다. 특히 실험적인 전자 음악가들은 이러한 노이즈를 통해 규칙에서 벗어나는 자유와 감각을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 초감각을 즐겼다. 그러나 균질한 점들로 구성된 디지털 매체에서 노이즈는 비일치의 규칙, 즉 오류로 받아들여진다. 선형의 선으로 이루어진 아날로그의 오류는 그 선들의 과정을 되짚어 살펴 볼 수 있겠지만, 수많은 은하수 안에 있는 점들을 찾아야 하는 디지털의 오류는 쉬이 찾기 어렵다. 디지털은 오류의 정확한 좌표 값을 모르면 결코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없는 3차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 사회는 우리들로 하여금 이 3차원의 공간 속에서 각각의 좌표들을 정확하게 찾아가라고 말한다. 화가 박종규는 바로 이러한 디지털 테크놀로지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오류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회화와 미디어아트를 통해 사회와 예술에 대해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2. 인식을 위한 예술적 오류

박종규는 화가로 불린다. 그의 작품은 미니멀리즘 계열의 추상회화나 아주 간결하고 세련된 순수회화로 읽힌다. 그러나 박종규의 관심은 회화의 추상성과 형식실험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는 디지털화된 사회의 체계를 분석하고 그 체계 속에서 발생하는 오류들을 시각화하고 개념으로 구성해내고자 한다. 여기서의 시각화는 오류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오류들이 발생되는 체계를 인식하고 잠시 판단을 중지하고 그 체계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러한 오류들의 이미지를 박종규의 전시 글을 쓴 여러 미술이론가들은 ‘노이즈’라고 지칭하였다. 특히 황인은 “노이즈를 사유의 프로세스를 지탱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키워드로서 공간과 시간의 제한적인 질서의 바깥에 존재하기도 하고 사물의 질료 속에 정체를 숨기기도 하는 불순물을 노이즈”라고 보았다.(2009) 또한 윤규홍은 “노이즈는 잡음으로 소리에 포함된 노이즈처럼 이미지에도 특정한 노이즈가 있으며, 모더니즘 미술에서 모노크롬 회화, 미니멀, 팝아트 하이퍼리얼 예술에서 제거된 노이즈를 복권하는 것이 바로 박종규의 회화”라고 설명하였다.(2012) 그런데 박종규에게 노이즈는 잡음을 의미하며, 그 이미지 잡음은 예술의 순수성을 위해 제거되거나 배제되어야 했던 것일까? 그리하여 배제되고 제거된 노이즈를 복권하는 것이 그의 진정한 예술적 의도인가? 이 '노이즈‘의 개념은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데 있어 명확한 개념인 듯 하지만 상당한 오류들을 지니고 있다. 모더니즘미술에서 배제된, 혹은 순도 높은 예술의 이상향을 위해 제거된 ‘노이즈’라는 개념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 또한 현대미술에서 왜 제거된 노이즈를 복권해야 하는가? 노이즈가 복권되면 회화의 개념이 진정 의미로 가득차게 되는 것인가? 이 ‘노이즈’의 개념은 작가가 작품에 드러난 우연적인 시각적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선택한 개념이다. 필자는 이러한 ‘노이즈’의 개념을 ‘예술을 향한 오류(error)’라고 지칭하고자 한다. 이 오류의 개념은 또한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속성에 대해 연구하는 박종규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작은 단초가 될 것이다. 그에게 오류는 또한 개념을 시각화하는 장치이자 화면을 투명하게 비우는 매개체가 된다. 그리하여 그는 가득 차있지만 공허하고, 비어있지만 꽉 찬 ‘빈 공간’의 균질한 화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진리의 반대어인 이 오류는 실질적 오류(error)와 논리적 오류(fallacy)로 대별되는데, 박종규의 경우는 사유의 판단이 이에 대응하는 사물과 일치하지 않는 실질적 오류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적합할 것이다. 그의 오류개념은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예술적 시선으로부터 출발한다. 초기작업인 두 개의 열쇠 중 하나만 작동하는 <두 개의 열쇠>(Untitle, 1998)로부터 신체를 투명하게 비워낸 작품과, 도시를 구성하는 건축물의 그리드나 타일을 투명한 비닐로 재구축한 작품(2008)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박종규는 명확한 진리와 특정한 규칙에서 벗어나 또 다른 차원의 진리와 규칙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그 규칙은 반대급부의 개념이 아니라 기존의 체계에서 발견해내지 못한 것들을 인식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투명한 비닐이나 실리콘으로 비공간의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그의 오류는 인식을 위한 것으로 새로움의 생성이 아니라 비균질한 체계를 발견하는 과정을 지향한다. 여기서 비균질은 사물을 감싸고 있는 표면, 즉 감각적인 접촉을 요구하는 투명한 비닐 그 자체가 자신의 내부이자 일부이고 또한 전체임을 드러내는 개념이다. 투명한 비닐로 포장된 빵은 그 자체로 빵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투명한 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화려한 포장지에 쓰여진 언어에 집착한다. 박종규는 이러한 언어체계가 영과 일로 이루어진 디지털의 속성과도 같이 그것 자체로 의미가 아닌 표면이자 빈공간, 그리고 예술을 향한 오류라고 말한다. 서구 현대미술이 가진 발전과 끊임없는 전복의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한 박종규가 말하는 오류의 발견은 창조를 위한 조용한 실험과도 같다.

 

3. 디지털 피부를 입은 회화

창조를 위한 실험이 ‘오류’라고 했을 때, 그 오류는 그릇된 것의 발견이 아니라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실수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 실수는 균질한 체계를 비틀어 보는 것이자, 주어진 현상을 재인식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인식은 현상학적 환원을 주장한 후설의 논리대로 판단중지의 괄호를 치는 것이지만, 또한 그 괄호를 풀었을 때는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오류가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양식적으로 보면 그의 작품은 반복과 질서를 통한 기하학적 공간을 선보이는 모던한 추상회화나 미니멀리즘 계열의 순수회화를 닮았다. 그러나 닮았다는 것은 표면이지 그 정신은 아니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특기할만한 점은 바로 디지털의 속성을 토대로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체 작업에는 ‘Layer’와 ‘Demension’의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층, 막, 겹’을 뜻하는 레이어(Layer)는 하나의 표면에 여러 표면이 중첩된 것으로 여러 층위의 해석이 가능함을 말한다. 또한 디멘션(Demension)은 차원과 관점을 뜻하며, 그의 작업에서는 평면과 입체를 넘나들며 의미의 확장을 뜻한다. 그가 이 레이어와 디멘션을 동시에 사용하는 이유는 회화의 표면과 회화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함이다. 규칙적인 패턴을 형성하는 그의 회화는 단순히 미술사적 위치 지움에 머물러 있지 않게 하며, 또한 그 이미지들이 단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오류 현상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규칙체계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린다. 그의 작품은 회화의 평면성과 순수성을 유지하면서도 유미주의적 예술에서 벗어나 사회와 소통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끊임없이 확장되는 도시의 건축물과 복잡한 구조들로 뒤얽힌 사회의 권력구조, 수많은 정보들이 넘쳐나는 사회의 연속적인 순간들을 기록한다. 그것은 거대한 송신탑과도 같이 사회를 향해 수많은 신호들을 내보낸다. 그러나 사회는 비릴리오가 말한 대로 질주를 위한 가속화된 주파수이자 의미들의 끊임없이 생산한다. 박종규는 오류를 통해 바로 이 질주를 제어하고자 한다. 그는 2010년 대구 중앙 파출소에 설치한 <Layers & Demension> 영상을 더욱 확장시켜 3층 전시실에 거대한 화면으로 송출시켰다. 이른바 디지털 폭포수로 불리는 이 작품은 디지털 전파의 오류들에 시간성을 부여해 끊임없이 아래로 떨어지게 하거나, 코드화 된 디지털의 상징적인 기호들을 거슬러 올라가 우주의 검은 암흑 속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향하게 한다. 컴퓨터 맵핑을 통해 제작된 이 영상은 오류가 난 디지털 주파선의 이미지를 스펙터클한, 혹은 숭고미를 느끼게 하는 거대한 시각적 감각 자체로 다가오는데 박종규는 바로 이 지점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바로 화려한 이미지 자체에 현혹되지 말라는 것이다. 오류의 이미지 너머에는 (비)의미로 가득 찬 빈 공간만이 존재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폭포가 아니라 또한 우주의 근원을 찾아가는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같은 신비주의적인 개념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것은 단지 아날로그 텔레비전의 정규방송시간이 끝나고 지지직거리는 이미지 잡음이 생겨나는 것과 같이 무의미, 무지시적이다. 이 오류는 신호의 입력이 출력으로 곧바로 연결되지 않고 간섭이 생겨나는 것으로 주파수가 변조되고 불균일한 상태에 있음을 뜻한다. 이 간섭의 주파수는 폭포와도 같이 끊임없이 떨어진다. 이 오류의 폭포는 가속화된 드로몰로지(Dromologie, 경주학) 체계를 무너뜨린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체계의 무너짐이 아니라 그 체계를 형성하는 다른 차원의 신호를 접하게 된다. 그 신호는 우리 내부로 쏟아져 내린다. 박종규는 바로 이러한 오류의 이미지, 이미지잡음을 통해 사회구조의 비균질성을 드러내며 또한 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과 예술의 순수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오류가 그릇된 것이 아니듯 송신과 수신의 비일치는 오류의 재인식을 요구한다.

 

4. 순수성의 좌표점

그는 (움직이는 이미지를 포함하는)회화를 추구하면서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핵심인 컴퓨터 프로그래밍 코드를 예술의 재료로 사용한다. “디지털의 빛이 주체로부터 객체 위로 발산되는 것이 아니라 객체로부터 발산된다”는 빌렘 플루서의 분석대로 디지털이 가진 전자기적 빛은 모든 객관적인 세계의 투명성을 눈앞에 보여주는 것이다. 그 투명성은 추상으로 가는 마지막 단계로 0차원의 무(無)가 존재하는 세계인 것이다. 그렇기에 특정한 사물이 아니라 디지털의 점들로 구성된 수치화된 현상 그 자체만으로도 투명한 개념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의 투명성을 우리는 이미 영화 매트릭스를 통해 인식하였고, 손가락 터치의 스마트폰 혁명을 통해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왜 박종규는 이러한 디지털의 투명성을 회화로 표현하고자 하는가? 그는 손으로 디지털의 우연적인 오류그림을 그린다음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재드로잉 하여 다시 수작업을 통해 직접 색을 칠한다. 코드화(Encording)된 수치적인 데이터를 시각화한다는 점에서 박종규의 작업 방식은 원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미디어아트는 196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컴퓨터 프로그래밍아트와 비디오아트를 거쳐 넷아트, 인공지능, 디지털 아트의 영역으로 급속도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러한 디지털테크놀로지 시대에 박종규의 작품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바로 최첨단의 디지털 시대 속에서 전통회화의 영역에서 회화에 대한 직접적인 물음을 던지기 때문이다. 컴퓨터 피부를 가진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 예술의 순수성은 회화로의 복귀가 아니라 디지털 신체를 입은 회화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이 시대 예술은 인간을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적극적인 창조의 주체가 되는 것에 기여해야 한다. 인간의 손으로 그린 회화는 그렇기에 시대를 뛰어넘어 회화의 순수성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박종규의 레이어와 디멘션은 코드화된 디지털 오류들을 통하여 회화의 표면성과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 여러 차원들을 넘나드는 예술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디지털 폭포를 통해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폭포의 시작점이 아니라 밑바닥, 폭포의 끝이라는 좌표점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길을 잃지 않고 암호화된 의미들이 그 자체로 비어있음을 인식하는 길이다. 박종규의 디지털 피부를 입은 전통회화는 회화의 순수성을 향한다.

J. Park’s Digital Painting : Images of Artful Digital Errors

Gon Baek | Chief Curator Yangju City Museum Chang Ucchin Museum of Art

 

Ⅰ . Creation of Non-Liner Digital Errors

In the 1990s, regular TV broadcasting hours were designated. At 1am the national anthem was blasted out followed by ‘white noise’ which appeared on the screen, turning it into a visualized static image or into a blank page where nothing is visible but an empty screen. Until October 2012, before the conversion of regular broadcasting to digital TV in 2013, all day TV broadcasting was not allowed according to the Broadcasting and Telecommunication Law, mainly due to concerns over the waste of radio signals. Putting aside cable TV broadcasting, until very recent years, we had to worry about the waste of radio waves and regular broadcasting stations used them to transmit a sea of information on society, the economy, politics and culture. The bulky oversized analogue TV sets transmitted a horizontal linier frequency, which was a one-way, centrally and directly controlled medium. From very early on, Namjune Baik has utilised such analogue TV systems. In 1963 he personally changed the centrally controlled TV receiver system to transform the horizontal frequency to a vertical one, presenting TV programs exposing ‘Noise’. The reason Namjune Paik is considered a great artist is that he has set a single TV frequency to two frequencies, transforming TV into an art canvas completely free from horizontal and vertical lines. The non-liner media, that Macluhan forecast as part of a future society, during the similar period, was realized through digital technology. Now non-liner digital technology provides people with homogeneous screens comprised of dots of light. The daily suspension of broadcasting is represented by the ‘white noise’ of analogue TV. The noise during these times comprised non-specific sounds to most people’s ears, but also a great art topic for some people. Particularly, experimental electronic musicians enjoyed para-sensory, escaping from rules whilst heading towards extreme sensation. However noise in digital media, consisting of homogeneous dots, is interpreted as non-compliance to rules, in other words errors. Analogue errors composed of liner lines can be traced back through a process, but it is not easy to find digital errors, it is like identifying dots in the Galaxy. Because digital is 3-dimensional itself, so unreachable without accurate values of errors on coordinates. A digital technological society requires that we search for the coordinates individually without failure, in this 3 dimensional space. Painter Jongkyu Park is highly interested in various ‘errors’ occurring in our digital technology society whilst delivering specific messages about society and art through his painting and media art.

 

 

Ⅱ . Artistic Errors for Recognition

Park is known as a painter. His works are interpreted as abstract paintings of Minimalism or very simple but stylish pure painting. However his interests are not limited to painting abstractness or the experiment of its forms. He analyses the system of the digital society and visualizes errors occurring inside that system. Here, visualisation does not mean exposing the errors, but recognizing the system which triggers specific errors suspending judgment for a while to examine the system. Many art theorists who have written about Park’s exhibitions call the image of those errors ‘Noise’. Especially In Hwang said “As the strongest keyword supporting a thought process, Noise is impurities existing outside finite rules of space and time whilst hiding inside objects’ materials (2009). Furthermore Gyuhong Yoon explained “Noise means any unwanted sound. There is the specific noise of images just like the one, part of the sound. And the painting of Jongkyu Park is to recover the Noise in modernism, eliminated from Monochrome Paintings, Minimal, pop art, hyper realism” (2012). However does this Noise mean any undesired sound to him? And did the noise of images have to be eliminated or excluded for the sake of purity in art? Therefore is recovering the excluded or eliminated noise his true intention for Art? This ‘Noise’ concept seems to be clarified to help understanding his artwork, but there is a significant logical gap. Does the concept of ‘Noise’, excluded or eliminated from modernism, to achieve highly pure art, utopia, really exist? Or why do we have to recover the eliminated Noise in modern art? Will painting be filled with true meanings once the Noise is recovered? He has chosen this ‘Noise’ concept to emphasise random visual effects in artworks. I would like to call this ‘Noise’ ‘errors toward art’ and this concept can be a starting point in understanding his world of art, including the study of the attributes of digital technology. From his perspective, the error is a device to visualise concepts as well as a medium transparently emptying the screen. Having said that, he can create consistent screens of ‘empty space’ which can be filled, but still be empty and at the same time, unfilled but packed. Error, an opposite word of truth, is classified into an artful error as disguised creation of art shown in Park’s artworks and logical fallacy. It is more appropriate to consider the artful error that Park has chosen, as falling into the actual error category where the judgment of thoughts does not match its corresponding object. His concept of the error starts from his artistic view of society. Jongkyu Park seeks for truth and rules at a different level, escaping from clear truth and specific rules. Such an attitude is well represented in his early artworks like <Two Keys> (untitled, 1998) describing only one of the two keys is working, or an artwork emptying the body transparently or the grids of structures consisting of the city or tiles re-built with transparent vinyl(2008). However those rules do not mean opposite, but are a device to recognise things undiscovered in existing systems. Therefore he has created art works of non-space with vinyl or silicon. His error is for recognition, pursuing the process of discovering non-homogeneous systems rather than focused on creating something new. Here, non-homogeneous means an object’s surface, in other words the transparent vinyl itself requiring sensitive contact is the inside, part as well as whole of the object. Bread wrapped with transparent vinyl itself is still bread. However rather than looking at the bread, we are obsessed with language written on a fancy wrapping paper. Park says such a linguistic system itself is not a meaning, but a surface, empty space and the error for art, just like the attributes of the digital world consisting of number zeros and ones. Discovering the errors, to get away from the development of and infinite overturns of modern art system, is a quiet experiment for creation of art, said Park.

 

 

Ⅲ . A New Painting Surfaced by Digital Formation

When an experiment for creating painting formatted in digital, an ‘error’ occurs in the process, this error is not the discovery of something wrong, but it refers to mistakes affecting outcomes. As it were, these errors induce artistically interesting outcomes. These mistakes are meant to distort the homogeneous system, whilst re-recognizing existing phenomenon. And that recognition means holding a judgment as Husserl argued in his ‘Phenomenological Reduction’ but once letting the judgment unfold after a pause, the phenomenon reveals a completely different error. In terms of form, his works are similar to modern abstract paintings presenting geometric space via repetition and order or to pure drawings of Minimalism. However they are similar just on the surface and not in sprit. The most interesting thing in his artworks is his working process using digital attributes. The outline of his works is based on ‘Layer’ and ‘Dimension’. Layer means ‘story, film, layer’, many surfaces are overlaid on a single surface, enabling interpretations of the different levels. Dimension means aspects and views, especially in his work, it means extended meaning moving across a plane and solid. He uses the layers and dimensions together to emphasize painting’s surface and paintings. His painting images are not merely representing digital technology errors but implying their close connection with social rules and systems. His works intend to go beyond esthetically pleasing pure art. Such a working process records many social aspects which are full of relentlessly expanding city structures, the complicated structure of social powers and a sea of information. This is transmitting countless signals to society like an immense transmitting tower. However, society, as Virilio pointed out, is constantly producing accelerated frequency for speeding. Jongkyu Park wants to control this speeding through the errors. He has enlarged the image of <Layers & Dimension>, which was installed in a central police station in Daegu in 2010, to transmit it on a massive screen in an exhibition hall at level 3. This is titled as a digital waterfall, allocating a time concept to the errors of digital frequency, enabling a constant fall-down or tracing back to the symbolic signs of encoded digital signals in order to direct the audience toward the pitch black darkness of the universe. Being produced via computer mapping, the image of digital frequency with errors offers an immense, spectacular or sublime stylistic visual sensation.

Beyond error’s images, only empty space filled with (non) meanings exists. What we see is not a waterfall and is not like the mysticism of Spaceship Odyssey searching for the origin of the universe. This is non-meaningful, non-referential just like the white noise of analogue television arising after its regular broadcasting hours. This error means a signals’ input which is not immediately transmitted, creating interference leading to frequency distortion and instability. This frequency of the interference constantly drops down like a waterfall. This waterfall of errors topples down an accelerated dromologie system. However, what we are experiencing is not a collapse of the system, but encountering signals at different levels, which still comprise of the whole system. The signal falls within us. He wants to expose the non-homogeneousness of social structures through such error images and Noise images, speaking about a different possibility of painting and purity of art. Because errors in this context do not describe something is wrong, rather the non-matching between the receipt and sending of signals requires a new understanding about errors.

 

Ⅳ . Updating Meanings for Purity of Art

He pursues paintings (including moving images) whilst using computer programing code, a core of the digital technological world, as art materials. As Vilem Flusser analysed that “The digital light does not illuminate over objects from a subject but objects illuminate the light”, digital’s electromagnetic light reveals the transparency of the entire objective world to us. That transparency is, as the last stage toward abstractness, the world where zero or nothing exists. Therefore, the concept of transparency can be created only with numeric phenomenon of digital dots, rather than specific objects. We have already recognized this digital transparency in a film titled ‘Metrics’ and we experience it at our finger touch on smartphones. Then why does Park want to express digital transparency in painting? He does hand drawing random digital errors to re-draw them in computer programs. Then he colours them manually. His painting visualises encoded numerical data, yet his working process is rather primitive. From the 1960s until today, media art has gone through an exponential development up to net. art, artificial brain, and digital art after going through a computer programing and video art. Then in this digital technology age, what meaning do his artworks hold? Because it directly casts a question over painting in the area of traditional painting amid this highly advanced digital era. In the era of digital technology covered with so-called computer skin, art purity is to create drawings in a digital body rather than going back to painting. Art of this age shall contribute to let human beings be active participants in its creation, rather than exclude them from it. Manually drawn paintings are a shortcut toward the purity of painting beyond age. Through encoded digital errors, his layers and dimensions tell us painting’s surface as well as the meaning and purpose of art, which moves across the various aspects of the digital technology era. Through his digital waterfall, we can recognize that the encoded meanings themselves are emptied, without being lost. The traditional painting presented in Park’s innovative digital surface seems to add a new meaning for purity of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