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제, 작가의 존재를 각인하는 개체 혹은 개별자들

 

고충환(미술평론)

 

 

 

박종규의 작업은 조형예술과 관련한 다중적인 지평을 가시화하고 있다. 회화나 조각 등의 특정 장르로 범주화되지 않는다. 대신 여타의 표현 가능한 장르들이 교차하고 있다. 평면 작업과 캔버스가 처한 조건을 일종의 오브제로 간주하는 어셈블리지나 멀티플 작업, 그리고 최근의 몸의 담론을 반영하고 있는 신체 오브제 작업과 사진 등을 포함하는 그의 작업은 보기에 따라서는 일관되지 않은 듯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이러한 작업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일체의 전제된 상부 개념에, 일테면 형식주의 혹은 순수주의 혹은 회화의 자율성에로의 회귀 혹은 특정의 이데올로기에 종속되기를 거부하는 근래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서와도 일치하고 있다.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화랑에 끌어들인 이후 처음으로 표면화된 담론을 반영하고 있다. 더 이상 단칭적인 개념이 아닌 총칭적인 개념으로, 회화 혹은 조각이 아닌 그저 예술의 표현으로, 혹은 삶의 표현으로 불려지기를 원하는 물건의 제시가 그렇다. 회화적 평면이 아니면서 조각적 입체도 아닌, 작품이 아니면서 한낱 공산품만도 아닌 물건의 생산을 염두에 두고 있는 도널드 주드 역시 이러한 관념으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다. 한마디로 일체의 가능한 분법적 구분의 애매한 경계야말로 현대미술의 특징 아닌 특징이 되고 있으며, 그 한 단면을 작가의 작업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평면 작업들은 설핏 보기에는 사물의 최소한의 구조적 국면과 회화적 조건의 미니멈으로서의 평면적 조건을 형상화한 미니멀리즘에 대해 개념적인 접근을 꾀한 한 변형으로 보이기도 한다. 작가의 아이덴티티마저 철저하게 배제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공간을 중성화하는, 무미건조하고 객관적인 물건을 뜻하는, 소위‘그리드’를 형상화한 것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캔버스 표면에 연필로 그린 보일 듯 말 듯한 선묘와 그 위에 덧칠된 희미한 채색 효과가 아그네스 마틴의 무미건조한 회화적 혹은 탈회화적 평면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상은 표면적인 것에 머문다. 작가의 평면은 소위 미적 거리두기 혹은 심미적 거리를 거부하면서 가까이 다가와 들여다보기를 원한다. 이러한 근접된 경험의 요구에서 시지각적 경험으로부터 촉각적 경험으로 옮아가는 현대 미술의 한 성질을 만날 수 있다. 캔버스 표면에 덧칠된 반투명성의 파라핀이 그렇다. 이 작업에서 파라핀은 흔히 그렇듯이 소재의 물성과는 다른 것이다. 캔버스는 몸이며 파라핀은 캔버스의 몸에 속한 신체 분비물이다. 이러한 사실은 신체의 성질을 흉내 내는 파라핀의 소재적인 성질을 상기하는 것으로 쉽사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캔버스는 더 이상 인식을 재현하는 매개적 차원이 아니라 그 자체 감각의 주체로 존재한다. 캔버스는 작가의 감각적 몸이 분절된, 미끄러지면서 연결된 몸들 중 하나요 일부이다. 이외에도 작가는 캔버스의 평면 위에 전개도를 그려 넣음으로써 접으면 어떤 상자형의 물건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로써 작가는 특정의 이미지를 재현한다는 캔버스고유의 기능을, 2차원적인 평면으로 존재하는 캔버스의 경계를 넘어선다. 평면과 입체가 공존하는, 그 존재가 애매한 물건을 가시화하고 있다. 캔버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서 처음부터 전개도를 그린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은 반으로 접으면 베갯잇이 되는 전개도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는 실제로 전개도를 접었을 때 가시화될 수 있는 형태를 옆에 나란히 전시함으로써 이렇듯 이 캔버스의 애매한 존재를 극대화하고 있다.

 

 

 

작가는 캔버스의 평면적 조건을 어떤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한 지지체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 자족적인 오브제로 인식하는 쉬포르쉬르파스를 연상시키는 작업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캔버스 천을 조각내어 나무 등의 내용물을 둘러싼 작은 형상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어셈블리지 혹은 멀티플의 한 제시로 간주 되는 작업이 그렇다. 이 작업 역시 캔버스 고유의 기능을 폐기 처분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어떤 이념의 형상화에 종속되는 것으로부터 캔버스의 존재를 방임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 작업은 수집과 관련한 인간 일반의 존재적 조건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끌림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물건들, 의미가 애매한 물건들(초현실주의적 오브제가 주목하는 지점이기도 한),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면서 사소한 이유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 잡동사니들, 파편화된 기억들, 연민들을 상기시킨다. 결국 인간의 인식이란 이렇듯이 파편으로 존재하는 잡다한 수집물들의 결과일 것이다.

 

 

작가는 신체의 재현을 통해 근자의 몸의 담론을 시사하고 있다. 속에 솜을 넣어 부풀려진 형태를 천으로 박음질한 심장이 그렇다. 신체의 실제 조건에 근접하기 위해 파라핀으로 표면을 마무리 한 후 그 위에 무작위적인 숫자를, 흔히 주민등록번호를 상기시키는 숫자를 적어 넣고 있다. 전작에서 작가는 숫자 대신 좋아하는 작가들의 이름을 적어 넣은 라벨을 붙여서 전시한 적이 있다. 이 작업에서 심장들과 작가들은 그 존재가 일치하는 동일성의 원리가 확인된다. 이에 반해 무작위적인 숫자들은 특정인을 지시하는 대신 익명적 존재를 상기 시킨다. 익명적 존재는 그 자체로 나 역시 그 심장의 주인일 수 있다는 보편적 원리로 증폭된다.

 

 

 

이로써 전작이 작가의 기원을 반영하는 개인적 차원에 머문 것이라면, 근작에서는 작가의 문제의식이 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 일테면 인간 일반의 존재 조건에로 옮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혹은 작가 자신의 심장들을, 중심들을, 주체들을 형상화한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이 작업 역시 캔버스가 어떤 이미지의 재현에 종속되지 않은 그 자체 자족적인 몸 혹은 오브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심장의 의미론적 상징을 지시하지 않는다. 단순히 상징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파라핀이라는 소재를 빌어 신체의 실제 조건을 흉내 내지 않고도 가능한 여타의 방법을 취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시도한 사진들은 외관상 특정의 미학적 가치를 염두에 둔 것이기보다는 흔히 스냅 혹은 스트레이트 포토로 범주화할 수 있는, 작가 자신의 존재를 기록한 평범한 것들이다. 작가 자신의 신체를, 예컨대 손이나 발 등을 기록하기도 하고, 소지품들을 비롯한 주변 일상을 담아내기도 한다. 평범하다고는 했지만, 다름 아닌 작가 자신의 조건을 기록한 것이란 점에서 작가에게는 개인사로 간주될 만한 존재론적 비중을 갖는 것들이다. 모르긴 해도 평범한 듯 보이는 대부분의 사진들이 존재하는 방식이 이럴 것이다. 각각의 표현들은 외관상 일관되지 않은 듯 보일 수도 있다. 이렇듯이 작품들은 표면적인 차이를 인정하는 한편으로, 내부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져 있다. 고립된 섬의 형태로 존재하기보다는 서로 연결되며 분절되며 미끄러지면서 붙어 있다. 이렇듯이 고립된 섬들을 이어주는 끈이 상징이 아닌 몸들이며, 인식이 아닌 감각들이며, 섣부른 범주화를 거부하는 오브제들이다. 구분된 듯 보이는 구획된 작업 군들은 무수한 개별자들의 집합체인 작가의 감각적인 몸이 자기 복제된 몸들이다.

The facts, which explain the existence of the artist

 

Chung Hwan Ko (Art Critic)

 

The art of Jong Kyu Park shows many different aspects. Park's works can't be categorized as pictures or as sculptures. Instead this art specifies categories, which classifies it. Out of the many different types of works such as assemblages or Multiples, objects, pictorial works, none does give the impression of being consistent. It is the objective attitude, which has a very close relationship to postmodernist ideas, which have a negative outlook on formalism, purism, and other kinds of idealism.

 

After Marcel Duchamp used a urinal in his works, there was much discussion and many opinions about it. These days' art works want to be perceived as a whole, to be seen just as art instead of being categorized as a painting or a sculpture, or just as an expression of life. Donald Jude has a similar idea to the idea of Marcel Duchamp such is that modern art became a special part of art itself and the reasons for this certainly is understood through the works of the artist His drawing seems to have used the idea of minimalism for one purpose only, erasing the identity of the artist and turning everything into a meaningless 2-dimensional grid system. The light pencil drawing on canvas can be barely seen and the paintings on top of this relate to Agnes Martin type pictorial and post-pictorial works. But this type of impression stops being a flat surface. The artist's works needs rather to be seen at close range, this modern art needs to be observed by looking and actual touching and feeling.

One example of this type of artwork uses paraffin on canvas. In this work using paraffin differs from using ordinary materials.

 

Firstly canvas is thought of as a body, and then the paraffin is the bodily secretion, which make up the body. These facts about paraffin actually proliferates the feelings of realism. At this point a canvas becomes something more than a canvas meaning that the canvas becomes the subject of an art by driving the artist to feel the canvas becoming a part of him.

 

Besides using paraffin, he also drew the ground plans, which showed that if they are folded, they could become a box. Therefore, the role of canvas now stepped over the boundaries of the old role. The ground plans show the existence of an object. It can also be seen as if the canvas was used for the purpose of only drawing a ground plan. This case can also be related to folding a canvas and it becoming a pillow cover.

 

Contemporary artist try to show the different roles of the canvas and to maximize the effects of it.

 

For example, artists are not using the canvas merely as a tool but, as an object serves as a support for surface. The example of this type of work involves cutting out the shape from the canvas and making a 3-dimensional art work which can be felt and touched and gives the idea of assemblage or multiplication. This type of work also set the canvas free of its traditional role as a tool for painting.

 

On the other hand, this type of modern art can provoke emotions of people by serving as a magnet for objects such as things with unexplainable meanings, things that have no special value, things that do remind us of destruction.

The art works in his shows made by stuffing cotton into an object and covering and stitching them together produced an art of the heart And to make it realistic, he finalized it by painting paraffin on it to give them a life like look and writing numbers on it, which resembles the social security numbers. While producing these he tried to indicate instead of the numbers the actual names of people. This act provoked the feeling that the heart really belonged to names. But, when he used numbers instead of the names, it was less effective as if belonging to an actual person.

 

By observing his earlier art we can assume that it stemmed from personal difficulties; his recent works we can observe as being common and specific in nature, which becoming contaminated by mankind.

 

Maybe the artists used them as an example. His work also shows that the role of a canvas played a role as a whole and not just a part to show only his heart. If symbolism was the objective, then he did not have to use paraffin in his work.

In this exhibition the artist's purpose use of the image has very little to do with a special or specific meaning but is rather a straightforward snapshot of the existence of oneself. Those pictures show parts of his body, like hands and feet and personal effects and related events Although having stated that the images were straightforward, because their subject was the artist himself, he has the right to call it an autobiography.

 

Every expression might look like having no special meaning. Such like the works have a difference in their expression; internally they art threaded together in a network of strings. Instead of existing in mysterious ways they stay together as one. The strings connecting the islands, art is not made of symbols but are rather a body, touching rather than thinking, and objects which do not belong to any category. Having observed his artwork, I can state that many objects, which were used, became one that is the expression of the artists themsel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