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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아니면 저것 50%의 확률_박종규_1998

​작가노트

나는 늘 두 개의 열쇠를 가지고 다닌다.

 

호주머니 속의 두 열쇠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오던 날 집주인 양반이 현관문 열쇠라면서 건네준 것이다.

열쇠 중 하나는 上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下라는 이름표가 붙은 열쇠였다. 두 개의 열쇠는 내 아내와 함께 집을 비울 때, 혹은 집으로 들어갈 때 필요하다. 열쇠는 현관문을 열고 닫는데 필요한 조그만 도구일 뿐이다. 어떠한 이름을 가질 필요성이 전혀없는 도구일 뿐이다. 최소한 내게는 그랬다. 그러한 이유로 열쇠마다 새겨진 이름표는 시간의 마찰에 의해서 희미해져 버리고 이제는 어느 것이 上이라 불려지던 열쇠인지 어느 것이 下라고 불려지던 열쇠인지 눈으로는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의 몫을 치루고 난 후, 습관적으로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거기에는 내 삶의 일부분이 녹아있고, 내 사랑의 일부분들이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은 내가 늘상 가지고 다니는 두 개의 열쇠를 필요로 한다. 두 개의 열쇠 중 어느 하나를 골라 열쇠구멍에 집어넣고 가만히 오른쪽으로 돌려본다. 어느날은 재수 좋게도 한 번에 현관문을 열 수 있는 날이 있고, 어떤 날은 다시금 다른 열쇠를 집어넣고 오른쪽으로 지그시 돌려 보아야만 열릴 때가 있다. 그것은 너무나 불확실한 것이고, 확률적인 것이지만 난 항상 그렇게 살고 있다. 단 한 번의 선택으로 문이 열리면 그 불확실하고 확률적인 것이 내 삶의 기쁨일 수도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매일 50%의 확률 속에 살아간다는 것.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생각들. 그 확률적인 것들이 내 삶속에 먹혀들어간다는 것, 점을 치듯이 살아간다는 것, 그런 불확실함은 내 유년시절부터 존재해왔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야만 공부가 잘 된다는 믿음 때문에 유난히도 일찍 학교에 달려가던 아이, 하수구 맨홀 뚜껑을 뛰어 넘을 때, 맨홀 뚜껑의 선을 밟지 않고 한 번만에 뛰어 넘어야만 된다고 믿던 아이, 동전 던지기로 행동의 규범을 삼던 아이, 그것은 분명 불확실한 확률 속에서 살고있는 것일 것이다.

 

서른이 지난 지금, 그 조금은 터무니 없고 어처구니 없던 짓거리들과 그 놀음을 내 작업의 내부로 끌어 들이려고 한다. 철없던 내 유년 시절 작은 신앙처럼 자리잡았던 기억들과 내가 항상 느끼는 감정들이나 맛들을 가지고, 내 작업의 일부분으로서 그 놀이들을 점잖게 끌어들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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