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과 노이즈, 선택과 배제의 프로세스

 

황인(Art Activist)

 

Layers of two dimension & three dimension은 박종규가 줄 곧 사용해온 작품명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그는 오랫동안 2차원과 3차원의 공간 즉, 평면과 입체라는 상이한 공간의 층위를 기반으로하여 가능한 조형과 이 둘 사이의 경계 공간에서 발생할 수있는 새로운 조형의 가능성을 실험해온 작가다. 이번 갤러리 신라의 전시회에서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볼 때 크게 셋으로 대별될 수 있는데, 이제까지 그가 지속해온 작업의 연장 선상에있는 평면 좌표계를 포함 한 바닥 설치작업, 사진작업, 그리고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노이즈 주제의 타 블로 작업이 그렇다. 이 셋은 재료에 있어서나 조형적인 양식에 있어, 일견 각자가 분리된 전혀 다른 작업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작가의 일관된 사유의 프로세스에서 초래 된 동일한 작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사유의 프로세스를 지탱하고있는 가장 강력한 키워드로서 공간과 시간의 제한적인 질서의 바깥에 존재하기도하고 사물의 질료 속에 정체를 숨기기도 하는 불순물로서의 '노이즈'(noise)를 들 수가있다. 작가는 이불순함의 정체와 역할을 적극적으로 끄집어 드러내는 시도를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있다. 조형의 순도 미니멀 미술이 대체로 기하학적 구조를 띄는 것은 조형의 본질과 그 질서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기하학(geometry)은 원래 땅(geo)의 측정(retry)이라는 필요에 의해 탄생하였으나 종국에는 홀연히 땅이라는 거친 질료의 세계를 떠나 무한한 순수 공간으로 그 영역이 확장되면서부터 투명한 균질 공간의 순수한 수학적 질서의 세계를 펼칠 수 있게되었다. 기하학이 땅을 떠 나서 비로소 학문으로 성립 되었 듯이 기하학적 구조를 띄는 미니멀 미술도 조형의 여러 요소 중에서 공간의 질서에 해당되지 않는 부분 예컨대 물성 등을 배제하려는 노력, 즉 불순물을 버림으로써 조형의 순도를 높이는 과정을 통해서 장르의 고유함과 엄격 성을 실현 시켰다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런데 땅으로 버리고 순수한 공간으로 쉽게 떠날 수 있었던 기하학과 달리 조형 예술에는 설사 그것이 기하학적 미술이라고 하더라도-언제나 일정량의 질료를 동반해야 만하는 불편한 운명이있다. 조형의 순도 높은 질서를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불순물인 질료를 동반해야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에서 자유로운 작가는 별로 없다이 모순을 피하기 위해 작가가 택하는 것은 우선 질료의 중성화 무력화 혹은 희박화가 되겠는데. 도널드 저드가 대표적인 경우다 어떤 미니멀리스트의 경우 순수 공간의 질서를 아예 순수 시간의 질서로 바꾸기도한다. 질료라는 질량을 가진 사물을 질료가 아닌 다른 시간적인 사건으로 바꾸는, 즉 사물을 사태로 바꾸는 경우가 되겠는데 니엘 또 로니가 여기에 해당된다. 박종규는이들을 옹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고있다. 그는 질료를 감추거나 희박화하지 않고 질료와 순수 공간 사이에 놓인 불안정한 영역을 극대 화시키는 한편, 시간의 질서를 거부하거나 그 질서에 순치(馴致)되지 않으려는 어떤 거친 존재 불순물이 상존 (常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려고한다. 불안정하고 거칠며 불순한 그들의 정체를 박종규는 노이즈 '라는이 름으로 부르고있다. 일반적으로 노이즈는 의도적으로 선택된 질서에서 배제 된 영역을 말한다. 사운드에서의 노이즈는 똑같은 소리의 차원인 잡음이 되겠지만 조형 예술에서의 노이즈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왜냐하면 공간과 물성 같이 성격이 전혀 다른 영역의 충돌 속에서, 또 공간의 영역에서도 입체와 꽹면 선(線). 점(点) 등 다른 차원의 공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평면 회화의 경우 평면의 차원에서 배제된 상위 차원인 입체가 노이즈의 영역이 될 수있다. 기하학적 미술의 경우 노이즈는 기하학적인 질서나 흐름의 순로(順路)에서 벗어난 공간의 영역 혹은 불필요한 요소인 질료나 물성 속에 잠복하고있다. 1) 고전적인 미술에서 노이즈는 발생할 수가 없다. 왜나하면 질료와 조형적 질서가 분리되지 않고 함께 뭉뚱그려 져서 표현의 주체로 드러나 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니멀 미술은 조형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 조형의 본질적 인 질서만을 단호하게 선택하기 때문에 그 만큼 거기서 불순물로 배제되는 조형적 요소도 많을 수 밖에 없다. 선택과 배제의 과정을 거쳐 이룩 된 조형의 질서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끄덕지게 질서의 영역에 개입하거나 그 질서를 방해하려고하는 존재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노이즈다. 노이즈는 사물의 표면에 노골적으로 (explicitly) 현현(顯現) 파에있는 존재 라기보다는 미니멀 미술에서 보듯 집중된 선택과 엄격한 배제라는 행위를 통해서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내 기 시작하는 함축적으로 (implicity) 잠재해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정체가 쉽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미니멀 미술에서는 조형의 순도를 높이는 데만 골몰 할 나머지 노이즈를 무조건 배제하여 버리기만 했지 그들에게 정당한 지위와 역할을 부여하고이를 다시 어떻게 재활용 할 지에 대해서는 별 고민이 없었다. 선택과 배제 굳이 미니멀 미술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선택과 배제라는 행위는 최근의 디지털 작업에서 필수 불가결하게 수반된다. 예를 들어 박종규가 이번에 처음 보이는 픽셀을 응용한 타블로 작업이 그렇다. 픽셀은 인쇄에있어 망점과 같은 역할을한다. 디지털 카메라는 언제나 유한한 숫자의 픽셀로 대상을 포착하여야만한다. 이 때 픽셀이 포함 할 수없는 영역은 배제시킬 수 밖에 없다. 미니멀리즘의 운명과 흡사하다. 그런데 이렇게 배제된 로컬 영역은 완전히 사라진게 아니고 픽셀에 선택된 부분을 극단적으로 확대했을 때 흐릿한 모습으로 그 존재 감을 드러낸다.이 흐릿함을 고의적으로 극명하게 만들면 픽셀은 직사각형이 몇 개 모여진 것 같은 구조처럼 불규칙한 거친 형상이된다. 로컬영역으로 떨어져 나갔다고 여겨진 잠복 상태의 노이즈가 단정 한 픽셀의 질서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박종규는이 거친 직사각형의 집합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업, 또 이들을 고의적으로 다시 완벽한 원형의 점으로 만든 작업 혹은 컴퓨터의 포토샵 작업을 통 해 거친 형상을 더욱 왜곡시켜 바코드를 연상시키는 길다랗게 혹은 짧게 분절 된 직선의 집합으로 구성된 작업 등 세 개의 화면을 삼연화 (Trotych의 형식로 보여주고있다. 노이즈는 선택에 따른 배제의 로컬 영역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실감 나게 나는 작업은 사진작업이 다. 사진에서는 프레임을 통해 공간이 제한적으로 선택된다. 박종규의 이번 사진작업은 전시장의 오브제 혹은 특정 공간을 사진 속의 프레임에 담고 그 프레임에서 배제 된 주변부의 공간 내부에 설치하여 다시 촬영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차이’를 발생시키는 일종의 자기 복제의 과정이다. 이 작업을 통해 이전의 프레임에서 배제되었던 주변부의 로컬 공간은 계속 틈입한다. 어떤 과정에서는 사진 표면에 얇은 비닐 막 같은 실제 오브제를 부착하여이를 다시 촬영하기도한다. 물성이 사라진 상태와 개입 된 상태 프레임 내부의 질서와 프레임 외부의 무질서 상태를 함께 제시함으로써 노이즈가 출몰하는 여러 양상을 보여주고있다. 마치 격세유전(隔世遺傳)처럼 거세되었다고 여겨졌던 형질이 어느 순간 불쑥 나타났다가는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사진이란 대상을 프레임 속에 잡는 순간 선택된 공간의 범위가 주어짐과 동시에 그 프레임 속에 갇힌 시간도 정지된다. 이 상태가 사진으로서는 순도가 가장 높은 지점이다. 이 완고한 공간에 외부를 개입시키고 과거에 정지 된 시간에다 현재를 계속 부여함으로써 최초의 공간과 시간이 빚은 선명한 화면은 점점 불가해 한 상태로 변질되어 간다. 반복 된 시간에 따라 최초에 선택된 순도 높은 공간과 시간은 점점 멸실되어 가고 공간과 시간의 질서도 무너져 간다 최초의 선택된 시간과 공간이 점점 무화(無化)되는 대신 선택에서 배제 된 시간과 공간의 영역이 점령하면서 화면은 불순물이 점점 우위를 점하며 뒤덮게 된다. 바닥 설치 작업에서 바닥의 좌표계는 카메라의 픽셀과 마찬가지로 이차원 상에서 단정한 기하학적 질서를가졌다는 점에서 미니멀리즘의 굳건한 규율을 유지하고있다. 그러나 그 위에 놓인 무거운 철 단괴(團塊)는 2차원 좌표계의 차원을 벗어난 3차원의 상태 일뿐만 아니라 기하학에는 전혀 불필요한 과잉의 물성을 갖고있다. 2차원과 달리 3차원에서부터 드디어 사물이 탄생 할 수있다. 따라서 2 차원과 3 차원의 차이는 단순히 점 선, 면으로 이어지는 공간의 순차적 인 도약의 프로세스와는 다른 관념과 실재라는 전혀 이질적인 세계의 아득한 간극을 보여준다. 실재 인 3차원을 2차원 평면 속에 담는 행위를 회화라고한다면 회화에는 언제나 추상 (abstraction) 작업, 즉 배제와 관념화의 행위가 늘상있어 왔다는것인데 이를 인식하고 체계화시킨 것은 칸딘스키에 와서부터다. 그런데 칸딘스키의 점 선, 면이 기하학의 그것과 다른 것은 그가 집착 한 것이 조형적인 질서보다는 회화에있어 이들이 가진 불투명한 생성력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조형의 궁극적인 순도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이즈의 존재도 무시되어 버렸다. 반면에 조형의 순도를 높이고 자 애쓴 도널드 져드와 같은 미니멀리스트들은 노즈를 인식하고도 이들을 배제해야만 그들의 회화가 가능하다고 노이즈를 고의적으로 무시했다 박종규의 설치 작업에서 바닥의 좌표계는 노이즈가 배제된 데카르트적인 균질 공간을 뜻한다. 이는 기하학적인 질서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 위에 과잉된 물성의 단괴가 놓여있다. 물성이란 사물 그 자체 (물 자체 Ding an sich)로 현대적인 개념으로 말하면 픽셀로 미분화되거나 기하학적 구조로 질서에 가둘 수 없는 외부의 불가해한 영역 노이즈의 과밀한 상태를 말한다. 무거운 단과로까지 농밀해진 노이즈가 구체적으로 어디서 발생했는지는 이 작업에서는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고있다. 그러나 그가 일관되게 사용해온 작품명 Layers two Dimension & three dimension에서 제시 되듯, 2차원을 뛰어 넘어 3차원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2차원 평면에 주름잡는 것이 효과적인 것처럼 기하학적인 평면의 질서에 주름을 잡는 데서 노이즈와 실재가 발생할 수 가 있다는(들뢰즈의 주름에 관한 견해를 응용하면) 실험의 중간 과정에 있다는 유추도 가능하리라 본다.  그 동안 미니멀 미술에 있어 노이즈는 철저히 배제되면서 금기시 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이제까지의 미니멀 미술이 시간이 닫힌 절대 공간의 창조론의 입장에 서 있다고 한다면 노이즈를 옹호하는 박종규의 미니멀 미술은 진화론을 지지하고있다. 그의 지지가 가능했던 것은 한편으로는 컴퓨터의 발전과 관계가 깊다. 사물을 디지털로 미분화 할 뿐만 아니라 선택과 배제)이를 다시 적분하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할 수있는 컴퓨터의 능력을 통해 노이즈의 정체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박종규는 이제까지 미니멀리즘의 질서 바깥에서만 존재하던 속한 노이즈를 조형의 질서 안으로 불러내어 적극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이를 새로운 공간 감각의 생성력으로 동원하고 있다. 그가 꾸는 꿈은 이제까지 양자 택일의 부담만이 주어졌던 노이즈와 미니멀 미술의 기묘한 동거의 실현이다. 실재와 관념이 둘 중 하나가 살아 남기 위해 다른 하나를 버리거나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이 둘 사이에서 벌어지고있는 모순과 긴장감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새롭고도 생뚱한 세계의 작업을 즐기고있는 듯이 보인다. 1) 기하학에서 노이즈의 발생은 변이점 혹은 공간이 찌그러진 부분에서 나타난다고 본다. 예컨대 사각형이나 육면체의 경우 면(面)이나 직선(直線)보다는 모서리 부분에서 노이즈가 발생할 확률이 크다. 육면체의 모서리들 중 찌그러진 곳이 있으면 이곳이 다른 모서리들보다 노이즈가 심한 공간이다.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난 지점이기 때문이다.

Minimal And Noise

 

In Hwang (Art Activst)

 

Minimalism and Noise, the Process of Selection and Exclusion In Hwang (Art Activst) Layers Two Dimension and Three Dimension is a title Jong Kyu Park has continuously used for his artworks. As the title suggests, Park uses two-dimensional and three-dimensional space, that is, the layers between the different spaces of surface and solid, as a base for experimenting with possible shapes and the potential for the emergence of new shapes from the spaces along the borders between them. In terms of form, the works featured in Park's latest exhibition at Gallery Silla can be broadly classified into three types: floor installations, which include the surface system of coordinates that are a continuation of past works; photographic works; and brand works of tableaus exploring the theme of noise.

At first glance, these three types of works seem completely different in terms of materials and how they made. But, they can also be viewed as similar in that they originate from the same coherent thought process. The dominant keyword underlying this thought process is 'noise'. Here, 'noise' refers to something that exists outside the limiting order of time and space and also to impurities that conceal their identity within the material of an object. The works in this exhibition reveal the artist's active efforts to expose the identity and role of such impurities.

The reason that minimal art generally follows a geometrical structure is to emphasize its belief in the essence of form and order. While geometry was originally born out of the need to measure (metry) the earth (geo), it suddenly left the rough material world of the earth and expanding into the realm of infinite pure space, it delved into a world of the pure mathematical order of transparent homogeneous space. Only when geometry left the earth was it able to establish itself as a legitimate academic discipline; likewise, minimal art, which follows a geometric structure, was only able to find the essence and rigor of its genre through efforts to exclude all the parts among the various formal elements, such as materiality, that did not apply to the order of the space. That is, a process of elevating the degree of purity of the form was carried out by discarding all impurities. However, unlike geometry which can easily abandon the earth for pure space, plastic arts-even if it is called geometric art has the inconvenient fate of always having to be accompanied by a certain quantity of material. Despite pursuing a high degree of formal purity, not many artists are free from the paradoxical situation of having to work with impure materials. Some artists attempt to elude this contradiction by choosing to neutralize, weaken, or dilute the material, and Donald Judd is an example of such a case. Meanwhile, other minimalists change the order of pure space into one of pure time. Thus, an object that possesses some mass of material is changed into a different temporal event that is not material. In other words, an object is changed into an event. Niele Toroni is an artist who fits this category Jong Kyu Park supports these various efforts but pursues another possibility. He does not try to conceal or dilute the material; rather, he expands the unstable realm that lies between pure space and material and actively tries to reveal the fact that some rough thing, an impurity that rejects the order of time or refuses to be tamed by it, remains in existence. Park identifies these rough and unstable impurities as ‘noise’.

Usually, noise refers to the realm that is excluded from a deliberately selected order. Noise within its own dimension of sound would be static, but in the plastic arts, noise is a lot more complicated. This is because there noise occurs within the collision of realms that have completely different characteristics such as space and materials, and even within the realm of space itself, it occurs between spaces of different dimensions such as solids, surfaces, lines, and dots. For example, in the case of painting on a flat surface, solids, which are of a higher dimension and have been excluded from the flat dimension, could become the realm of noise. In the case of geometric art, noise is hidden within the realm of spaces that have diverged from the usual path of the geometric order or flow or within the superfluous substances or materials. (1)

Noise cannot occur in classical art. This is because the formal order and the material are not separated but melded together and revealed as the agent of expression. However, minimal art, in order to raise the degree of purity of form, rigorously selects only the most basic order of the shape; consequently, there are many elements of form that will inevitably be excluded as impurities. Without being completely separated from the order of form that is achieved through the process of selection and elimination, there are things that tenaciously intervene or interfere in the realm of the order; these things are noise. The identity of noise is not easily revealed because it is not something that is explicitly clear on the surface, but rather, as seen in minimal art, it is something that remains implicit and latent and begins to reveal its true character only through the act of focused selection and rigorous elimination.

Thus far, minimal art has only been interested in increasing the degree of purity of form, indiscriminately excluding and discarding any remaining noise without showing much concern for how noise can be given a proper status or role or be recycled.

 

Selection and Exclusion

 

Besides minimal art, the act of selection and exclusion inevitably accompanies more recent digital works. Jong Kyu Park 's tableau works incorporating pixels, which are being shown for the first time at this exhibition, are an example of this. The pixel plays the role the dot plays in printing. The digital camera must always capture its subject with a finite number of pixels, and the areas which the pixels cannot include must be excluded. This is a fate very similar to the fate of minimalism. However, the local realm that is excluded in this way does not disappear completely, but rather has its sense of existence revealed in the form of a hazy blur when those parts that have been selected in the pixels are extremely enlarged. When this haziness is deliberately made clear, the pixels? become a rough irregular form like a structure made from a cluster of rectangles. This is because the dormant noise, thought to have fallen off into the local realm, interferes with the straight order of the pixels.

Jong Kyu Park presents three images in the form of a Triptych-one that shows a group of rough rectangles just as they are; a second one in which the rectangles have been intentionally reshaped into perfectly round dots; and a third work in which the rough forms have been distorted even more using Photoshop on a computer to create long or short segmented lines that remind us of a bar code. Noise arises during the process of accepting the local realm that has been excluded based on selection; the works in which this fact can be felt in a relatively concrete way are the photographic works. In photography, the space is limited and selected through the frame. In these photos by Jong Kyu Park, objects or specific spaces in the gallery are captured within the frame, then this is placed within the peripheral spaces that were excluded from the first frame and re- photographed. This process is repeated. This is a kind self- reproduction process that causes differences' to occur. Through this work, the local spaces of the peripheries, excluded in the earlier frame, continuously intrude. In some processes, an actual object, such as a thin plastic membrane, is attached to the photo's surface and re- photographed. A state in which materiality has vanished and a state in which it interferes-various aspects of the appearance and disappearance of noise are shown by presenting the frame's internal order alongside its external state of disorder. It is like an atavism in which a disappearing characteristic suddenly reappears only to disappear again, repeatedly.

In photography, the bounds of the selected space are set the instant the subject is captured within the frame, but at the same instant the time captured within that frame is also frozen. For a photograph, this is the point at which the degree of purity is highest. By engaging the outside into this inexorable space and by continuously injecting the present into a time frozen in the past, the clear image created in that first space and time becomes increasingly vague. The highly pure time and space first selected according to repeated time is gradually lost and the time and space order begins to collapse. The time and space initially selected melts increasingly into nothingness while the realm of the excluded time and space expands, and the picture gradually becomes covered with impurities The system of coordinates on the floor of the installation work has a simple two-dimensional geometrical order that is like the pixels of a camera and in this sense adheres to the strict rules of minimalism. However, the heavy steel nodules that lie on top not only go beyond the second dimension into a third dimensional state, but they also possess excess material that is totally unnecessary in geometry. Unlike the second dimension, in the third dimension an 'object' can finally be born. Thus, the difference between the second dimension and third dimension shows that there is a much wider gap between notion and reality in the heterogeneous world than in the simple process of successive steps in space formed by dots, lines, and surfaces.

If we view painting as the act of putting something real and three- dimensional onto a two dimensional surface, then we can say painting has always involved the task of abstraction, that is, excluding and conceptualizing; this point was first recognized and systematized with Kandinsky. However, Kandinsky was more interested in painting than in formal order, and so his dots, lines, and surfaces differed from those of geometry in the power of their non-transparent creative force. Since Kandinsky did not pursue the ultimate degree of purity of form, he also ended up disregarding the existence of noise. On the other hand, minimalists like Donald Judd who strived for a high degree of purity of form deliberately ignored noise despite recognizing it since their paintings were only possible if noise was excluded.

The system of coordinates on the floor of Jong Kyu Park's installation artwork represents the Cartesian homogeneous space from which noise is excluded. This is nothing but a geometrical order. Nodules of excess material are placed on top of this. ?If we express this as a more contemporary concept, the idea of the material as a thing in itself (Ding an sich) refers to the dense state of noise in a realm incomprehensible from the outside that cannot be divided into pixels nor confined in the form of a geometric structure. It is not clearly revealed in this work where the noise, which has become even denser with the heavy nodules, originates from. However, as the repeated title Layers Two Dimension and Three Dimension suggests, the most effective way of going beyond the two-dimensional and giving birth to the three-dimensional is to create a fold on a flat two-dimensional surface. We can make an analogy here with the midpoint of an experiment in which noise and reality arise by creating a fold(applying Deleuze's view of the ‘fold’/le pli) on a flat geometric surface.

Thus far in minimal art, noise was inevitably excluded and made taboo. If minimal art up to now has taken the position of creationism in which time is closed in an absolute space then Jong Kyu Park's minimal art, which preserves noise, supports evolutionism. In some ways, this support is possible for reasons closely related to the development of the computer. This is because computers can not only digitally break down objects (selection and exclusion), but they can also do the work of reintegrating them, repeatedly, so that the identity of noise is revealed more clearly.

Jong Kyu Park takes the noise, which until now has only existed outside the order of minimalism, and calls it into the order of form, giving it an active position and mobilizing it as a force for creating a new sense of space. His dream is to realize the odd cohabitation of noise and minimal art; until now there was the burden of choosing between one or the other. Reality and conception? rather then weakening or abandoning the one in order to preserve the other, the conflict and tension between the two can be used as a source of energy to enjoy a quirky new world of art.

 

1)In geometry, noise is thought to occur at the point of variation or the part of the space that is bent. For example, in the case of a rectangle or hexagon, noise is more likely to occur at the corners than on a surface or straight line. If one of the corners of a hexagon is more bent than the others, the noise there will be more extreme than at the other corners since that is the point that has departed from the existing or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