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도 십자가

박찬경(작가, 평론가)

 

박종규는 파리에서 공부할 때, 쉬포르-쉬르파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한다. 쉬포르-쉬르파스 (지지체-표면)는 회화에 대한 일종의 실증적 유물론의 태도에서 회화랑 프레임, 직물 물감 등으로되어 있다는 명제를 내세웠다. 쉬포르-쉬르파스는 서구의 미술사에서 반복 된 일류 전 비판의 70년대 프랑스판이다 헐리우드를 내세운 미국식 대중 문화가 마구잡이로 세계를 제패 해 나갈 때 70년대 초에 유럽 회화가 초기 아방가르드처럼 그 물리적 조건으로 돌아가려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만한 일이다. 이것은 흔히 생각 하듯이 그림의 넓은 상상적 세계를 무덤덤한 사물로 축소하려고 했던 것 보다는 그림을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는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유물론적 태도를 뜻했다. 내가 보기에, 박종규의 작업에는 쉬포르 – 쉬르파스와 공유하는 어떤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입방체를 평면도로 제시하거나 비닐로 늘어지게 만들어서 입체는 평면으로, 평면은 입체로 만든 것은 쉬포르-쉬르파스의 주제 의식과 유사하다. 또 물감을 그냥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리콘 피막처럼 촉감의 대상으로 만든 것도 그렇다 이들은 모두 평면이 망막에 흡수되거나 머릿속에 떠올리는 이미지보다는 만질 수있는 물건에 가까운 것이므로 쉬포르-쉬르파스의 명제에 충실한 것이라고 할 수있다. 그러나 박종규의 작업은 쉬포르-쉬르 파스보다 훨씬 심미적이다 여기서 심미적이라는 것은 그냥 예쁜 오브제라는 뜻도되지만 (아마도 그럴 경우에는 비판이 되겠으나), 섬세하고 감각적이라는 말에 가깝겠다. 섬세하고 감각적이라는 말이나 예쁘다는 말이나 그것이 그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섬세하고 감각적이라는 것은 오히려이 작업들이 상당히 표현적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쉬포르-쉬르파스와 반대되는면이다. 아그네스 마틴의 작업을 볼 때 우리는 손으로 그림 연필 선의 떨림 따위를 보면서,이 그림들이 단순히 격자(Grid)와 같다고 할 수 없듯이 박종규의 작업도 최소한이기는하지만 여전히 회화적 요소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실리콘이 매끄럽게 공업적인 표면처럼 처리되지 않았으며, 연필 선이 칠해진 평면의 틈을 비집고 묘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그러니까 일반 회화에서 나타나는 화가의 몸이 배제되기보다는 섬세한 긴장 속에서 역설적으로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캔버스가 노골적으로 사물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 된 물질이 오히려 일종의 신비감을 갖춘다 이러한 예술적인 측면은 실리콘처럼 유기물과 무기물의 중간에있는듯한 재료나 반투명의 비닐의 사용에서도 느껴지지만 또 다른면에서는 십자가와 같은 아이콘을 반복해서 사용하는데서도 나타난다. 물론 여기서 십자가는 육면체(정확히는 벽면에서 튀어 나온 오면체)의 평면도이지만 그는 이것이 십자가처럼 보인다는 점을 피하려고하지 않았다. 오히려이 종교적 아이콘은 완벽한 각도와 평면을 지닌 육면체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말하자면 수학이나 우리 머릿속에서나 가능하다는 사실에 의해 신비감의 다소간 문학적인 근거를 얻게된다. 2001년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그의 작업은 그래서 그런지 심리적인 공명을 자아 내고 어떤 작업은 특히 심리적 외상(trauma)의 표현으로 보이기도한다. 이런 관심에서 보면 사진 위에 비닐 조각을 붙인 세 개의 작품이 특히 흥미롭다. 그 중 하나는 시멘트 벽면이 드러난 천정을 찍은 사진 위에 비닐과 테잎 조각을 붙인 것이다이 작업에서 역시 비닐과 종이테잎이 사진의 트릭을 재치있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입체와 평면의 게임을 다른 형식으로 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도 십자가가 등장한다. 여기서 십자가 형태는 이미 사진 안에있는 건물의 구조를 반복 한 것이며, 비닐은 마치 딱딱한 콘크리트 구조물의 상처를 감싸고 있다는 듯이 십자가 형태를 감싸고있다. 다른 두 개의 사진 작업도 이와 비슷한데, 하나는 사진 찍혀진 벽의 재질이 강조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페인트 칠이 강조된 것이라서 십자가 형상에 각각 다른 에피소드(여기서는 평면, 입체 회화 등에 대한 참조들로 미술사적이고 관념적인 에피소드라고 할 수있는)를 결합하고 있다는 점만이 다르다. 이 사진 + 비닐 시리즈에서 십자가 형상은 유연체의 평면도에서 거의 독립 해 약간 비극적인 상장처럼 비의적인 문자처럼 보인다. 1999년에 반투명의 실리콘 고무 피막만으로 만든 일련의 오브제들을 보면, 그의 작업이 어떤 허무감 같은 것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있다. 나로서는 그의 실패작이라고 생각되는 실리콘으로 떠낸 사람의 형상에서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또는 성공작으로 보이는 벽에 걸려있는 수건 같은 형상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가 평온한 수학적 이상 세계의 불가능성에 관하여 말하려고 하는 때에도 이 작업들에는 어떤 비극적 정서가 배여있다. 이러한 비극적인 정서는 드물게는 일상에 대한 재담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두 개의 열쇠 사진), 보통은 수량적인 인식과 물질의 성질 사이의 불일치(같은 면적을 다른 소재로 만든 작업들)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는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사물에서 쌍을 발견한 98년 작 사진들처럼, 주변에 편재하는 이원적 구조에 대한 강박으로도 나타난다. 나는 너무 하나의 주제로 한 작가의 전작을 소급하여 꿰뚫는 비명에 의구심을 갖지만 그의 95년 작업이 여성과 남성 이미지를 엇갈리게 겹쳐 놓은 것에서 이러한 주제가 그에게 꽤 오래된 것이라는 심증을 굳히게된다. ‘이러한 주제’란 이 동일성의 실패, 여러가지 엇갈림이다 우선 입체와 평면이 만나지 못한다. 그리고 그림의 재료와 그림이 동일 면적과 다른 물질이 빈 것과 찬 것이 두 개의 열쇠 구멍이 모든 쌍들이 엇갈린다. 그가 발견 한상에는 예컨대 의자와 책상이 붙어있는 강의실 학생용 걸상이 있다. 이것은 책상과 의자의 ‘결합’처럼 보이지만 책상과 의자가 어색하게 붙어있는쪽에 가까워서 의자로도 책상로도 불편한게 이 특이한 걸상이다. 이 모든 엇갈림이란 이를테면 이 걸상의 비애와도 같은 것이다. 박종규의 작업은 회화나 시각 또는 사물을 반성하려는 점에서 70년대 서구 미술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 분석학적인 관심사로 보아도 흥미로울 것이다. 그는 인식의 구멍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면서 그것을 심리 외상적인 이미지와 연결시킨다. 나는 이러한 양가적인(ambivalent)경향이, 나쁘게 보면 하나의 타협이며 좋게 보면 풍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은 현관문의 아래 위로 달린 열쇠 구멍에 맞는 열쇠를 찾는 것처럼 확률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것은 한편 의지의 문제인데, 그가 열쇠에 조그마한 표시만 하더라도 열쇠를 혼동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A Plane Surface Figure Cross

 

Chan Gyeong Park (Writer, Critic)

 

Jong Kyu Park, is said to be influenced a lot by the Support-Surface FR movement when he studied in Paris. Support-Surface can be defined as having a kind of positive attitude towards materialism in painting and it advocates proposition that painting is made up of frame, fabric and paint. It is fully understandable that Support-Surface attempted to return to a physical condition like the initial avant-garde in the 1970s which is about the criticism the imaginary that are repeated in Western art history. It means a materialist attitude, which attempts to extend painting into space we actually experience rather than reduce enormous imaginary worlds into static objects. In my opinion, some work of Jong Kyu Park has something in common with Support-Surface while other work does not. The fact that he presents solid bodies as ground plans or changes solid bodies into plane surfaces or plane surfaces into solid bodies by using loose plastic sheets is also similar to thematic consciousness. Besides the fact of using paint on the objects and touches of silicone film is also similar to this thematic consciousness. All these could be faithful to the proposition of Support-Surface, which is closer to the touchable object rather than the image, the image is a plane surface that is absorbed by the retina and exists only in the mind. Nevertheless Jong Kyu Park's work is much more esthetical than that of Support-Surface. Here 'esthetical may just mean pretty (this could be subject to criticism), as this 'esthetic' is close to delicate and sensuous. The expression of delicate and sensuous or pretty can sound similar in meaning but here delicate and sensuous means that the work is rather significantly expressive. This aspect is opposite to that of Support- Surface. As we can't think when appreciating Agnes Martin's work, his pencil line draws similar grids. As a result Jong Kyu Park's work has at least a pictorial element. In his artwork for example, silicon surface are not processed as smoothly as those industrially treated and the pencil line exquisitely appears passing through ground plans. In relation to his artwork the 'artist's body' is expressed paradoxically by a delicate tension rather than removingt. In his artwork the canvass is not explicitly objectified and the objects and materials used are rather mysterious. n his artwork the 'artistic property' is expressed not only in the use of semi-transparent plastic sheets or material which is halfway between organic matter and i repeated use of icons like a cross. Here, a cross is a hexahedron (strictly speaking. it is pentahedron) and he seems not to deny that the symbol looks like a cross. This religious icon gets some literary connotation of mystery by the fact that the ganic matter like silicon but also in the nor actual hexahedron with perfect angle and plane surface does not exist the perfect hexahedron is only possible in our mind His artworks that were primarily created in 2001 project sympathy and some artworks seem to express trauma. Here I am especially interested in three artworks where pieces of plastic sheet are attached to photographs. One of them is the artwork, where pieces of plastic sheet and paper tape are attached to a photograph taken of a ceiling, which cement exposed concrete walls. This artwork also shows plastic sheets and paper tape expressing wit and accordingly uses the interaction of solid bodies and plane surface and here also a cross appears. The shape of a cross repeats the structure of the building, which is already in the photograph; plastic sheets wrap the shape of a cross as if it embraced the injury of the concrete structure. Two photographs are also similar in style to the photograph just mentioned above. One emphasizes the quality of the material and the other stressed a touch of paint and the only difference is a different chronology (here, it refers to the plane surface, solid bodies, painting and it can be considered as art historical) combining into the shape of a cross. In this photograph and plastic sheet series, the shape of a cross seems of esoteric character and as somewhat tragic symbol almost independent of the hexadrons plane surface When appreciating a series of objects, which are created out of semi- transparent silicon rubber film in 1999, I can see that a feeling of futility is expressed. I can see a certain tragedy in his work; for example when he expresses the impossibility of a mathematically ideal world, or when he exposes forthrightly the shape of man, which is molded in silicon, which I think his 'a failure' or when he expresses towels hanging from the wall which I think is 'successful. The tragedy is uncommonly expressed as a joke about daily life (see the two photographs of keys), and on the other hand it is usually expressed as discordance between the awareness of quantity and the property of a substance (for example the artwork that expresses the same space with different materials). His artwork also shows a fascination for dualistic structures that are omnipresent in the photos of 1998. Found pairs of objects that can be encountered frequently in daily life Though I am skeptical about criticism that approaches an artist's whole artworks retrospectively treating only one subject, I became confident that this subject has been visible in his artwork of 1995 overlapping female and male representations. This subject' refers to sameness and discrepancies. Firstly solid bodies and plane surface can't meet. Painting and painting materials are the same field but of different substance. Unoccupied object and occupied object, two keyholes and all these doubles do not join each other. What doubles did he find, for example, a classroom chair where desk and chair are attached to each other? This artwork appears as a 'combination' of desk and chair but desk and chair are attached in an unnatural way and it is uncomfortable to use the chair or the table or both. All these discrepancies could be called the tragedy of this chair. Jong Kyu Park's work seems to start with western art of the 1970's whose goal was introspective painting, viewpoints and objects but on the other hand it will be interesting to approach his artwork through a psychoanalytic viewpoint. He takes great effort to find the key to awareness and combine it with the image of trauma. I think his ambiguity may be of positive meaning and on the other hand could comprise a something negative. It is not a problem of probability, only if we look for a key, which fits the lock. The problem instead is that the keys are not confused by their ma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