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노이즈의 폭발
김원갑(경일대 건축학과 교수)
앤디 워홀(Andy Warhol)은 1966년 자신의 작업을 회화와 영화의 시각적 범주를 넘어서 음악과 음향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켰다. “피할 수 없는 플래스틱의 폭발”(Exploding Plastic Inevitable). 앤디 워홀이 당시 뉴욕 아방가르드들의 원조격 클럽이었던 파크 애비뉴 213번지의 맥스 캔자스 시티에서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나 윌리엄 버로우즈(William Burroughs) 등과 함께 연주를 하던 실험적 언더그라운드 밴드인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를 보고 매니저를 자처하여 연출한 쇼의 제목이다. 빌리지 보이스의 기자 요나스 메카스는 당시 이 작업을 “갑자기 복합적 매체의 쇼가 전 도시에 펼쳐진다. 4월 한달간 돔에서 열린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공연은 이 새로운 예술에 가장 폭발적이고 요란하고 동적인 폭발적 플랫폼을 제공했다. 이들의 쇼는 현대 세계의 가장 극적인 표현을 남겨 놓았다. 피할 수 없는 여기와 지금, 그리고 미래 모두가 있다.” 라고 묘사했다.
뉴욕의 프로토-펑크(proto-punk)를 탄생시켰던 실험적 장소 맥스 캔자스 시티와 CBGB에서 활동하던 루 리드(Lou Reed)와 존 케일(John Cale)이 주축이 되었던 실험적 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워홀의 천재성에 의해 미술과 음악의 극적 조합으로 다시 탄생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모르는 누구라도 대부분이 막연한 이미지로나마 알고 있는 유명한 걸작, 흰 바탕에 노란 바나나로 상징되는 워홀의 재킷 작업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실험적 노이즈 사운드와 결합하여 당시의 팝아트와 프로토-펑크 음악을 60년대의 아이콘, 그리고 사이키델릭 실험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46년 후 화가 박종규는 비슷한 맥락의 통섭적 실험을 ‘다시- 새롭게’ 선보인다. 2012년 11월 7일- 대구의 봉산문화회관 전시실-은 CBGB가 시공을 넘어 닥터 후와 함께 타디스 속에서 ‘펑’ 연기와 함께 등장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6:00 PM.
전시실의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로부터 분기되어 발생되는 미니멀 노이즈. 한쪽 벽에선 미니멀 노이즈 음향이 흐르고, 다른 한편의 벽에서는 미니멀 노이즈의 평면적 입체가 존재한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는 노이즈들로부터 방사되고 튕겨 나간 채, 다양한 벡터들의 충돌로 인해 발생한 특이성(singularity)의 모나드적 존재들이 파편과 같이 방기되어 있다. 들뢰즈(Gilles Deleuze) 식으로 말하자면 전시실 내부의 화이트 노이즈의 장(field)으로부터 만들어진 일관성의 표면(plan de consistance) 위에서 새롭게 창발(emergence)되는 미니멀 노이즈의 단편들이다. 이것은 그동안 박종규의 작업의 주축을 이루었던 레이어(켜)와 차원들이 음향과 충돌하여 새로운 통섭적 다양체로 창발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노이즈들의 다양한 흐름 속에서 순간적으로 포착되어 시간의 한 순간으로 동결된 시각적 형태로서의 노이즈 흔적들. 이 흔적들은 다시 시간의 차원을 통해 음향의 파장들로 활성화된다. 시각적 노이즈들의 흔적은 팰림세스트(Palimpsest)에 기록된 다양한 켜들의 시각적 노이즈들에 대한 발굴 작업을 통해 시간대별의 각각 다른 노이즈들로 활성화되는 것이다.
박종규와 에릭의 만남은 백남준과 존 케이지(John Cage)의 만남을 통시적으로 재현한다. 데쟈부적인 이 사건은 대구의 또 하나의 CBGB, 바바렐라에서의 우연한 조우에 의해 이루어진다. 볼티모어에서 실험적 음악 활동을 하던 에릭은 바바렐라의 모니터를 통해 9월의 어느 날, 자신이 컴퓨터와 믹서를 가지고 단원들의 한명으로 참여했던 테리 라일리(Terry Reilly)의 “In C” 공연 실황을 유튜브를 통해 재현한다. 우연히, 그러나 어떤 모나드적 주름의 펼쳐짐에 의해 필연적으로 이 실황을 보게 된 박종규는 노이즈들의 통섭적 충돌을 생각하게 되고, 박종규와 에릭의 공동 작업은 즉석의 에너지 교환을 통해 마치 신진대사와 같이 이루어진다. 박종규의 평면과 입체의 물리적인 3차원 노이즈들에 에릭의 시간적 4차원의 노이즈 파장들이 결합해 4차원의 시공간 연속체(space-time continuum)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전시실의 한쪽 벽은 거대한 하나의 면이 다시 작은 많은 프레임들로 나뉘어 3차원적 2차원 면을 형성하고, 이 작은 2차원적 면들은 또 다시 무수히 많은 임의의 점들(디지털 방식으로 공작 가공된 지름 3mm의 구멍들)로 환원된다. 이것은 다시 한번 차원의 인식적 문제를 야기시킨다. 가까이서 본 개미들이 3차원적 존재로 보이나 멀리서는 0차원적 점으로 보이고, 3차원적 프레임이 1차원적 선으로, 3차원적 프레임과 3차원적 두께를 가진 평면들이 2차원적 면으로 환원되는 시각 인식의 차원 유희와 같이, 박종규의 켜들을 통한 차원 유희는 4.5에서 10차원까지의 수학적 차원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것은 뉴튼식의 3차원 공간으로부터 n차원의 양자적 미시 공간까지로의 인식적 여행을 경험하도록 한다. 이러한 시각적 차원 유희는 다시 한번 다른 쪽 벽에서 투사되는 동영상과 미니멀 음향의 4차원과 결합해 또 한번의 비정수적 차원의 부드러운 공간에 대한 경험으로 이끈다. 3차원의 전시 공간은 다양한 차원 유희를 통해 시에르펜스키(Sierpensky)의 스폰지나 폰 코흐(Von Koch)의 곡선, 혹은 만델브로(G. Mandelbrot)의 프랙탈 기하학 같이, 1 이상의 분수 차원을 가지는 매끄러운 공간으로의 탈영토화 운동의 공간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나아가 2차원의 작은 백색 면들에 뚫린 임의의 0차원적 구멍들은 다양체 속의 다양한 노이즈들의 흐름 속에서 브라운 운동을 하는 미세한 미립자들의 벡터들이 충돌한 결과로 남는다.
굳이 들뢰즈식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박종규의 작업은 처음부터 작업의 주제인 ‘켜들(Layers)과 차원들(Dimensions)'의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들뢰즈식 운동의 이미지들로 가득 차있다. 들뢰즈의 지질학적 용어들과 같이 다양하게 성층화된 켜들이 팰림세스트들의 겹침과 같이 존재하고, 이 켜들의 흔적은 각기 다른 차원들의 형상으로 인식되는 시스템적 구조가 박종규 작업의 인식적 미로를 형성하는 기본적 틀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전시실의 또 한쪽 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차원들의 유희를 경험하게 된다. 0차원의 점들이 또 다른 벡터들의 흐름과 충돌해 만들어진 선적 요소들로서의 노이즈들은 두께 1cm의 3차원적 패널로 존재하는 동시에 2차원의 면으로 인식을 공유하게 된다. 전시 공간은 이제 다양한 차원들의 잠재적 노이즈들로 가득한 다양체인 동시에 그 다양체들로부터 발생한 현실적 노이즈들의 또 다른 다양한 차원들이 펼쳐지게 된다. 작가가 말하듯, “질서에서 배제되고, 불안정하고 불순한 존재” 로부터 잠재했던 노이즈들은 일관성의 표면 위에서 점들, 그리고 선적 요소들의 다차원적 노이즈로 현실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매튜 바니(Matthew Barney)의 크리매스터(Cremaster) 시리즈 3에서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가 건축가로서 구겐하임 미술관 파라펫 벽체의 한쪽 공간에 계속 투척해 나간 불순한 바셀린 덩어리와 같이, 이번에는 불순한 석고 덩어리로 고형화되어 3차원의 노이즈로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박종규의 작업은 결국 다양체로부터 발생하는 이러한 불순한 노이즈들에 대한 현대의 수많은 현상화 작업들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7:00 PM.
컴퓨터 작업된 알고리즘의 결과로 발생한 무작위적 노이즈 구멍(점)들의 반대편에선 전방위 예술가 에릭의 실시간 컴퓨터 작업에 의한 노이즈 음악이 전시 공간을 무한히 반복하며 루핑(looping) 궤적을 공전하고 있다. 관객들의 침묵, 혹은 웅성거림, 잔이 부딪치는 소음들은 이제 ‘60년대의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 in the 60's)의 한 시점과 같이 점차 흥분과 쾌락, 낙관적 미래, 미래적 노스탤지어의 앰비언트 속으로 용해되고 있다. 마샬 베르만 (Marshall Berman)의 “모든 단단한 것은 공기 속에 용해된다”(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라는 금언적 반향 속에서 소멸하는 레드 와인의 향과 함께...
Exploding Noise Inevitable
Wongaff Kim | Prof. Kyungil University
Andy Warhol expended the territory of his work into music and sound beyond visual realm of painting and cinema in 1966. “Exploding Plastic Inevitable”. It was the title of the show that Andy Warhol produced as a manager after seeing the concert of Velvet Underground, the experimental underground band that played with Allen Ginsberg and William Burroughs at Max’s Kansas City where was proto-club for New York avant-garde on 213 Park Avenue South in New York City at that time. The journalist Jonas Mecas wrote: “Suddenly the intermedia shows are all over town. The Velvet Underground performances at the dom during the month of April provided the most violent, loudest and most dynamic exploration platform for this new art. Theirs remains the most dramatic expression of the contemporary generation. The place where its needs and desperation are most dramatically split open At the Plastic Inveitable it is all Here and Now and the Future”.
Velvet Underground that was led mainly by Lou Reed and John Cale who played at the experimental place Max’s Kansas City and CBGB that gave birth to the proto-punk in New York was reincarnated by dramatic combination of fine art and music by Andy Warhol the genius. The famous masterpiece which everyone who doesn’t know Velvet Underground knows as a vague image, the jacket art by Andy Warhol which was symbolized as a yellow banana on white background made pop art and proto-punk the icon in the 60’s and the symbol of psychedelic experiment via combination with the experimental noise sound of Velvet Underground.
After 46 years, the painter Jongkyu Park remakes consilient experiment in similar context ‘again-newly’. November 7th, 2012 (the exhibition room in Bongsan cultural centre in Daegu) shows the moment of appearance of CBGB with Doctor Who with the pop-up of gas out of Tardis crossing space and time.
6 : 0 0 pm .
Minimal noises which generated after the bifurcation of white noise in the exhibition room. The sound of minimal noise flows from one side wall, and the planar cube of minimal noise exists on the other side wall. And the monadical existence from the singularity that generated by the collision of various vectors, radiated and leaped from noises was left as a fragment in the middle of the room. To speak with Deleuzian tone, those are fragments of minimal noises newly emerged on the plan de consistance which was made from the field of white noise in the exhibition room. This shows the sequence of emergence of new consilient multiplicité after the collision of layers and dimensions that were the key words of the works of Jongkyu Park with sounds. The traces of noises as a momentary frozen visual form in time captured in the various flows of noises. These traces, by turn, are animated as wavelength of sounds through the dimension of time. The traces of visual noises are animated as respectively different noises by time through the excavation of visual noises of various layers which were registered on the palimpsest.
The encounter of Jongkyu Park with Eric represents that of Namjune Paik with John Cage diachronically. This event as a dejavu happens as an encounter in Barbarella, another CBGB in Daegu. Eric who has a career of experimental music in Baltimore represents the concert of “In C” of Terry Reilly which he took part in the band as a keyboard member with PC and mixer via Youtube through the monitor in Barbarella one day in September. By chance, but through the inevitable unfold of some monadical folding, Jongkyu Park saw this video clip and thought the consilient collision of noises, and this made the collaboration work of Jongkyu Park and Eric like a metabolism through direct energy exchange. This is the moment of the emergence of 4th dimensional space-time continuum through the combination of the plane and physical 3rd dimensional noises of cube of Jongkyu Park with 4th dimensional noise wavelength of time.
One wall in the exhibition room forms 3rd dimensional 2nd dimension which is divided into many small frames from one huge plane, and these 2nd dimensional planes, in turn, are reduced to innumerable random spots( digitally processed 3 mm diameter holes). This provokes epistemological question of dimension again. Like a dimensional game of visual perception that once we recognize the ants that we see at a short distance as 3rd dimensional existence, but we recognize those as 0 dimensional existence at long distance, and recognize 3rd dimensional frame as 1st dimensional line, recognize planes with 3rd dimensional frame and 3rd dimensional depth as 2nd dimensional plane, the dimensional game of Jongkyu Park’s work through layers makes mathematical dimension from 4.5th dimension to 10th dimension available. This let us experience epistemological journey from Newtonian 3rd dimensional space to n dimensional micro space of quantum. Again, this visual dimensional game leads us to the experience of smooth space with dimensions with non-positive numbers conjoining the moving image projected from the other wall with 4th dimension of minimal sounds. 3rd dimensional exhibition room transforms into a smooth space with dimensions with fractional number as a space of deterritorialized movement like Sierpensky sponge, Von Koch curve, fractal geometry of G. Mandelbrot via dimensional game. Furthermore, 0 dimensional random holes punched on 2nd dimensional white small planes remain as a result of collision of vectors of particles moving through the trajectory of Brownian motion in the flow of various noises in the multiplicity.
Jongkyu Park are full of Deleuzian movement images like the meaning of the words of “Layers and Dimensions” that is the theme of his work. The systemic structure that multiple stratificated layers exist like superimposition of palimpsests, like Deleuzian geological term, and the traces of these layers are recognized as forms in each different dimensions is a basic frame which forms epistemological labyrinth of his work.
We now trace our eyes to the other wall in the exhibition room. Here, we experience dimensional game again. The noises as linear elements made from the collision of 0 dimensional dots and the flow of other vectors exist 3rd dimensional panel with 1 cm depth, at the same time exist as 2nd dimensional plane. The exhibition room now comes into the multiplicity full of virtual noises, and at the same time unfold the other various dimensions of actuall noises generated from that multiplicity. As he says, noises that exist as virtuality from “excluded from the order, unstable impurities” are actualized as multi-dimensional noises of dots, lines on the plan de consistance. At the other side, like impure vaseline lump that was throwed to one side of parapet wall of Guggenheim museum by Richard Serra in Cremaster 3 of Matthew Barney, 3rd dimensional noise that solidified as impure plaster lump reappears in this case. After all, we can understand Jongkyu Park’s work as a case of many contemporary phenomenological works about impure noises that generated from the multiplicity.
7 : 0 0 p m .
At the opposite side of random noise holes(dots) generated from the result of computerized algorithm, noise music through the real time computer work by multi artist Eric revolves through the looping trajectory infinitely repeating in the exhibition room. Silence of audiences, or buzzes, noises from the toast of glasses now are melted in the ambient of excitement, hedonism, optimistic future, futuristic nostalgia like one moment of Swinging London in the 60’s. With the smell of red wine that disappears in the aphoristic reverberation of Marshall Berman’s words, “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