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파르마콘적 특성에 관한 해제들1)

<2차원과 3차원의 레이어>를 중심으로

배종헌 (화가, 위덕대교수)

 

 

 

어느 겨울날, P는 강둑을 거닐다가 우연히 건너편 아파트 공사현장을 먼발치서 보게 된다. 그다지 특이할 것도 없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고 있는 그런 공사다. 다만, 건물의 외형과 규모가 주변 공간을 압도하고도 남을 위용이 이 시대와 도시공간 자체를 거듭 특징짓고 있는 그런 현장이다. P는 우두커니 서서 일상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는 참이다. 메마른 이 도시의 하늘과 맞닿은 건물의 상부에 시선이 멈춘 건, 우연도 필연도 아닌 P의 2차원과 3차원의 시각적 환기에 관한 성찰의 과정에 대상 이미지가 포착되었음을 의미한다. 저 막은 뭘까? 입방체를 감싸고 있는 저것은 P가 탐구하고 있던 입체의 평면적 전개 혹은 그 반대의 작업과 일치하고 있지 않은가? 카메라를 꺼내 찍어두고 곰곰이 생각해봐야겠다고 중얼거리며 강둑을 빠져나온다.

 

 

 

이상은 박종규의 특정한 한 작품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이런저런 부분들을 종합하여 추론한 작품 밖의 이야기다. 작가의 시선을 추정하여 걸어봄은 언제나 즐겁고도 긴장되는 일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다 생각해도 좋고, 박종규의 <Layers of Two Dimension & Three Dimension>(2004/2006)을 읽어 내고자 앞으로 설정하게 될 가설과 그 해제를 위해 임의로 구성한 전제로 이해해도 좋겠다.

 

 

 

작품의 내부로 들어가보자. 한창 구축되고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은 미완의 상태로 멈춰 있다. 추락방지망과 비닐덮개와 크레인이 미완의 건물을 휘감고 있는 건설현장, 아니 그 사진이다. 그 이미지다. 차갑고 건조하며 죽어버린 공간처럼 느껴지는 것은 사진의 특성에 따른 정지된 시간과 잿빛의 기운,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연의 푸른 숲도 심지어 인기척도 감지할 수 없는 오직 거대한 콘크리트 덩이를 화면 가득 채운 마크로적 세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이질적인 부분이 있으니, 반투명의 비닐막이다. 아마도 작가가 스스로에게 혹은 우리에게 던진 물음은 이것과 깊은 연관이 있겠다. 얼핏 사진 그 자체로 보이기도 하는 이 비닐막은 원형의 재현물로서의 사진이미지가 아니라 사물 그 자체의 재료로 돌아가 있으니 말이다. 비닐막. 저 막은 무엇인가요? 라는 물음을 감출 수 없는 건 유독 그 부분을 비닐로 처리한 이유가 있을 터라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건설현장에서의 비닐덮개는 동절기 콘크리트 타설 후‘양생’2)을 위해 씌워놓은 거적일 것이나, 박종규의 작품에서의 비닐막은 달리 읽히기 때문이다. 제목대로‘2차원과 3차원의 레이어’는 사진이라는 평면과 사진 밖의 외부 세계 사이에 놓인 막으로 읽힌다. 그런 의미에서 박종규의 레이어는 평면과 입체라는 서로 다른 차원의 사이에 밀어넣은 ‘파르마콘(pharmakon)’에 해당한다는 가설이 가능하다. 파르마콘은‘유익하거나 해로운 마약 또는 염료’를 말하는데, 플라톤은 문자나 회화를 이 파르마콘과 같은 것이라고 지적하였다.3) 서구 사상적 전통에서의 로고스(말)중심주의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공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말을 모방한 문자와‘실재를 모방한 회화’4)는 원본과의 차이를 전제하는 재현의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주지하다시피, ‘파르마콘’은‘약’이면서 동시에 ‘독’이 될 수도 있는, ‘적’이자‘동지’이기도 한, 그리하여 로고스의 철학을 위협하는 야누스(Janus)의 얼굴로 비유될 수 있다.5)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는, 혹은 이것도 저것도 아닐 수도 있는 정체불명의 비/존재다. 박종규는 이러한 파르마콘적인 모호한 정체성을 지닌 비닐막을 통해, 평면과 입체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비존재적 존재를 가시화시킨다. 우리는 한 장의 사진을 볼 때 사진 속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마주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2차원과 3차원의 동일시는 순식간에 일어나는데, 박종규는 흐릿하고도 얇은 비닐을 통해 2차원과 3차원의 공간적 동일시를 문제 삼고 그 과정을 지연시킨다. 공간적 인식의 지연은 박종규의 작업을 2차원과 3차원의 사이를 번갈아가며 오락가락하는 동안 지속된다.

 

 

 

박종규는 이 작품에서 "사진은 과거이고 비닐은 현재"6)라고 말한다. 비닐막이 자리한 사진은 과거이기도 하고 현재이기도 한, 어쩌면 과거도 현재도 아닌 미래가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사진 위의 비닐은 즉물적인 상태로 영원한 현재, 즉 미래에도 현재가 되어버리는 시간의 확장을 꿈꾸며 시간적 인식 또한 지연시킨다. 시간의 파르마콘은 레이어를 통해 간극 사이를 첩첩이 끼어듦으로써 결정적 찰나의 시간을 허물어버린다. 이미지 자체는 참도 거짓도 아니다. 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 말이다. 회화와 사진은 시각적인 이미지를 전달하는 매개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화나 사진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대상과 동일시의 과정을 피할 수 없다. 다만, 대개의 경우 회화에 비해 사진은 참에 보다 쉽게 근접한다. 사진이 일종의 증거물로 종종 사용되는 것만 보더라도 은연중에 우리는 사진 속의 대상과 그 이미지를 동일시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미지, 특히 사진은 신뢰를 강요하는 시각적 권위를 스스로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다. 박종규의 작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미지가 지켜내고 있는 영토를 벗어나보고자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는 평면을 배회한다. 아마도 P가 강둑을 걷다 말고 카메라를 꺼낸 이유는 입체에 달라붙은 평면, 즉 엷은 비닐막을 담기 위해서였다. 입체가 평면의 집합체라면 이것은 다시 평면으로 분할될 수 있다는 전제로부터 비닐막은 평면이면서 입체인 상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공사현장/입체가 카메라에 담기는 기록되는 순간, 아니 그보다 더 빨리 P의 뇌리 속에서 이미 이것은 이미지화/평면화 되었다. 사진은 인화의 과정에서 입체를 담고 있는 이미지 즉 평면의 상태로 고착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고착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눈으로 사진을 보고,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머릿속에 이미지를 다시 그려내야 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평면 위에 있지만 실상 평면 위에는 없기도 하다는 가설이 가능해진다. 이미지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려진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이미지는 평면의 언저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우리의 머릿속에 이런저런 상을 그려놓으며 평면의 평면성을 교란시킨다. 마치 파르마콘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중적 태도를 취하면서 말이다. 박종규는 그리드 위의 그리드/아크릴판 작업에서“붓터치로 평면의 조건에서 벗어나고자 했다”고 말 하였던 바, ‘평면의 조건’은 평면의 평면성을 넘어서는 순간 감지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것으로 이해된다. 사실, ‘평면성’과‘그리드’는 모더니즘 미술에서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아이콘(icon)들이다.7) 내용이 형식에 용해되어버리는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식의 형식미학이 더 이상 관심을 받지 못하는 시점에, 박종규는 다른 차원의 평면성과 그리드를 그려내고 있다. 그의‘평면의 조건’에 관한 탐구가 평면성 그 자체에 머물지 않고, 입체의 이미지로서의 평면성을 레이어라는 껍질로 박락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이것은 평면성의 거부가 아니라 평면의 전제조건을 환기시키는 보다 구체화된 작업들로 연결되고 있다.

 

 

박종규의 <2차원과 3차원의 레이어>라는 일련의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문제는 평면으로부터 들어올려진 엷은 막(레이어)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파르마콘적 개입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읽게 된다. 사진 위, 혹은 그리드가 그어진 평면 위의 엷은 막은 2차원도 3차원도 아닌, 그 사이에 놓여 있으니 말이다. 파르마콘과 같이 아주 좁은 통로를 찾는 과정이 그의 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지점일 터이다. ‘평면의 조건’은 평면 안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평면성은 그 평면성을 넘어서는 순간 파악될 수 있는 것이라는 잠정적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한편 그리드로 구성하고 있는 일련의 작업들에서는 공간의 조건에 관한 고민에 보다 깊이 천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적 원근법을 적용한 그리드가 그 예인데 사진 위의 레이어에 비해 각 차원의 뒤섞임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요컨대, 모더니즘 미술이 지켜온 대표적인 아이콘(icon), 즉 '평면성'과 '그리드'라는 두 축에 레이어라는 장치를 올려놓음으로써 파르마콘적 통로를 개척하고 모더니티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고자 탐구 중인 것은 아닐까. 이미지화된 현존재의 불확실성을 공간 속에서 사유하며 거닐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각주

1) 이 글은 <해설이 있는 현대미술기획전> 카탈로그(포항문화예술회관, 2008.4.)에 수록했던 원고임을 밝힌다. 이 글에서의 '이미지'는 평면회화, 사진 등의 시각적 이미지를 주로 말함.

2) 보양(保養)이라고도 한다. 콘크리트를 치고 난 후 콘크리트의 경화를 보호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동절기에는 거적 포장을 통해 일정기간 보온이 요구된다.

3) Jacques Derrida, 김성도 역, 『그라마톨로지』, 민음사, 1996, pp.560-561.

4) 엄밀히 말하자면, 플라톤적 관점에서 우리 눈앞의 실재는 형이상학적 진리의 세계인 이데아의 모방이므로 회화는 모방의 모방, 즉 재현의 재현물에 지나지 않는다.

5) 김형효, 『데리다의 해체철학』, 민음사, 1993, p.100

6) 사진은 언제나 현재적으로 있다고 볼 수 있겠으나, 박종규의 언급은 비닐이라는 물질의 현재성에 대한 상대적 과거로 이해된다.

7) 정헌이, 「그리드를 넘어서 : 모더니즘 이후의‘아이콘(icon)’」, 美術史學제15호, 한국미술사교육연구회, 2001, p.178-186. 참조. 정헌이는 특히‘그리드(Grid:격자구조)’를‘미술의 모더니티를 선언하는 상징적 아이콘’으로 보고 있다. 로잘린드 크라우스로부터 재인용된 그리드가“말의 침투로부터 시각적인 영토를 지켜내고자 했던 모더니즘 미술의 가장 효과적인 이미지”였다는 진술은 그리드에 의한 공간 분할을 통하여 모더니즘 미술이 형식주의의 극치로 치달았다고 볼 수 있다.

Bibliographical introduction to Pharmakons Property of images

 

Focusing on Jong Kyu Park's “Layers of two and three dimension”

 

Jong Heon Bae (Artist, Professor of Uiduk University)

 

One winter day, as P was walking along the riverbank, he accidentally saw construction sites in the far distance. It was an ordinary construction site which we can see everywhere. However, their appearance and sheer size have such splendor that surrounding is overwhelmed. Standing vacantly, P keeps looks at the birth of daily life. His eyes fix the upper side of the building, which touches the sky above the barren city the object image is captured in a process of introspective visual awakening of two and three dimension. What is the screen? Does the thing that wraps cubes coincide with the flat development of solid bodies or vice versa, is that what I am exploring? P takes a photo of it and gets away from the riverbank murmuring something to himself.

This is a story outside of the actual artwork, drawing an inference by synthesizing various parts while I watch Jong Kyu Park's artwork. You may understand that I make this story up assuming that the artist's viewpoint makes me curious. You may understand that I build up a premise of hypothesis and bibliographical introduction to read Jong Kyu Park's Layers of Two & Three Dimension" (2004/2006).

 

Let’s get to the actual artwork. Concrete structures under full construction are stopped in an unfinished state. Construction sites where falling prevention net and plastic cover, cranes surrounding incomplete buildings, well the photographs, the image. What the space gives off cold, dry and dead air is attributed to microscopic worlds that is filled with stopped time, atmosphere of gray tone and enormous amounts of concrete. By the way there is a heterogeneous component, which uniquely draws attention, semitransparent plastic sheet covers. Probably, the question that Jong Kyu Park asks himself or us may be closely related to this plastic sheet, which seemingly appears in the photographs itself returning to the material of matter itself not the photographic image as a reproduction of the original. What I can't obtain from the question' what is a plastic sheet?' is the assumption that there may be reason for handling plastic sheets, they cover construction sites and are commonly used for curing the concrete but in Jong Kyu Park's artwork it should be read differently As the title suggests, Layers of two and three dimension" is to be read as the film that is placed between plane surfaces , namely photographs and the external world In that sense, the hypothesis that Pharmakon' is applicable to Jong Kyu Park's layer, which is inserted between different dimensions namely the plane surface and solid body, is possible. Pharmakon refers to beneficial or harmful drug or dyes' and Plato pointed out characters or paintings may be similar to Pharmakon. The remark of Plato supports the basis of a logos oriented idea in western philosophical tradition. In this regard, characters that mimic speech and paintings that mimic reality 'are no more than the technique of reproduction that premises the difference with the original and so does a photo.

 

As you know, Pharmakon' can be 'medicine' and poison enemy' and comrade' at the same time and thus it can be compared to the face of Janus that threats the philosophy of logos. It is an uncertain nonexistence/existence that can be or not. Jong-Kyu Park visualizes non-existential existence passing through the gap between plane surface and solid bodies by the use of plastic sheets, which has an ambiguous identity like Pharmakon. When we see a photograph, we often misunderstand that we are faced with the scenes in the photograph as it is. Identifying two and three dimensions in a flash and Jong Kyu Park raises problem of special identification of two and three dimensions through semitransparent and thin plastic sheet and even delays this process. The delay of spatial awareness lasts while his work hovers between two and three dimensions In his work Jong Kyu Park mentions "the photograph is the past and the plastic sheet is the present". The photograph's plastic film cover is maybe placed in the past, the present or the future. The plastic sheet on the photograph delays the awareness of time in a real state while dreaming of the extension of time, the permanent present. Pharmakon of time demolishes the time of decisive moments by inserting gaps into layers.

 

An image itself is neither true nor false for it can be true or not and paintings or photos are no more than media that deliver visual images. Nevertheless, image like paintings or photographs can't avoid a process of identification with an object. In most cases, compared to paintings, photographs can approach the reality more easily than painting. The photo can be used as evidence; unknowingly we are not hesitating to identify an object in the photo with the image. Therefore images and especially photo can make visual authority that forces reliability on its own. At this point, Park's work is seeking the way that escapes the territory, which images build Images are wandering plane surfaces. The reason P takes out his camera may take the plane surface that is attached to a solid body namely thin plastic sheet cover for a supposedly solid body as an aggregation of plane surfaces and solid bodies divided into plane surfaces, plastic sheet show both states, of plane surface and of solid bodies. When construction site's solid body is recorded through the camera, the object is flattened in his mind. The photograph shows that it is a fixed image that contains solid bodies namely in the state as a plane surface in the process of printing. It is not completely attached to it for we experience the process and recall and visualize the image in our mind at the time when we see the photograph. The hypothesis that images seems to exist on the plane surface but actually do not exist on the plane surface may be possible. Image disrupts the flatness of the plane surface building in our mind various images while plane surfaces use ambiguous attitudes like Pharmakon. As Park mentioned that "I tried to escape from the condition of the plane surface with touch the touch of a brush" in his work 'grid/acrylic on grid', I understand that he realized that' the condition of the plane surface can be detected at the moment when it is overcomes the flatness of the plane surface.

 

Actually, flatness' and grid' are icons that modernist Art consistently pursued. At this time Clement Greenberg style's of formal aesthetics contents are dissolved into forms do not draw attention any more, Park draws flatness and grid with different level for his exploration for 'condition of plane surface' does not stay flatness itself but removes flatness as an image of solid bodies build of layer. This combined with more detailed work awakens the premise of the plane surface not a rejection of flatness in general I can see that the problem Park explores consistently in <Layers of two and three dimensions> closely relates to the Pharmakon intervention of time and space through thin layers, raised from the plane surface of thin plastic covers on the photographs and placed between two dimension and three dimension. The process that seeks very narrow passage like Pharmakon may be the most important in his work.

 

Conditions of flatness' is not completed in the plane surface. I can make a tentative conclusion that flatness can be realized at the moment that overcomes flatness. On the other hand, I think that Park is deeply interested in the condition of space in a series of artwork that is composed of grid and there for example is grid that has plane surface of two dimension applied perspective to three dimensions and a painting which shows various mixture on each level compares to layers on the photograph. In short, isn't he exploring to scope within the limits of modernity and pioneers the Pharmakon passage by placing layer on two axes namely flatness' and grid', representing icons that modernism keeps to itself? Isn't he walking while thinking about uncertainty of presence imagined in sp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