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빛의 마음: 한국 모더니즘 회화의 재구성
이진명
전 대구미술관 학예실장
Ⅰ. 모더니티의 조건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규정하기 까다로운 여러 의미로 중첩되어 있다. 주제에 ‘희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미술 속 화이트에는 한자 ‘소(素)’를 포함해야만 그 의미가 통하게 된다. 화이트에는 희다는 지각의 상황을 가리키지, 그 외의 뜻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素)’에는 ‘본디’, ‘바탕’, ‘꾸미거나 덧붙이지 아니한 것’, ‘정성(精誠)’, ‘희다’, ‘질박하다’, ‘분수를 지키다’ 등 뜻의 범위가 훨씬 넓고 용례가 다양하다. 진정 영단어 ‘화이트’라는 한 단어로 로버트 라이먼(Robert Ryman, 1930-2019)의 세계를 규정할 수 있을지언정 한국 작가들의 세계를 모두 규정할 수는 없다. 한국 모더니스트 회화가들의 흰색의 세계는 색과 물성이 지니는 지각을 넘어, 훨씬 다층적이고 유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모더니즘의 의미에 대하여 분명하게 되짚어가야 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 온라인]에서는 영어 ‘modern’의 첫 번째 의미로서 “현재와 최근에 지속되는 것을 가리키며 떨어진 과거와 구별되는 것이다. 현시대 혹은 현재 시기를 유지하거나 현시대에서 비롯된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한다.(2.a.) 두 번째 의미는 응용된 뜻으로서, “예술과 건축의 운동이거나 그 운동으로부터 파생된 작품을 뜻한다. 그것은 기성과 전통 양식과 가치를 거부하면서 출발한 것이라고 규정될 수 있다.”라고 정의한다.(2.h.) 널리 알려진 것처럼 ‘modern’이라는 말은 6세기에 사용되었던 라틴어 ‘modo’에서 나왔으며, 그 뜻은 ‘바로 지금(just now)’을 의미한다. 이 말은 ‘오늘날의(of today)’라는 뜻을 지닌 단어 ‘hodiernus’와 합쳐져 ‘modernus’가 되었으며, 지금 우리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쓰는 ‘modern’이라는 말이 되었다. 따라서 ‘modern’은 동아시아의 용어로 17ㆍ8세기를 가리키는 근대(近代)나 20세기, 21세기를 가리키는 현대(現代) 모두를 가리킨다. (학자에 따라서 포스트모던이라는 개념은 실패한 개념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다만, 동시대를 뜻하는 컨템퍼러리(contemporary)라는 용어가 예술과 만날 때에는, 아방가르드의 급진적 성격이나 시간상으로 가장 현재와 가까운, 말하자면 시간의 업데이트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컨템퍼러리 예술과 모더니티 예술을 구분해줄 수 있는 철학적 근거는 애매하다. 이에 대해 당대 최고의 예술철학자인 피터 오스본(Peter Osborne, 1958-)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개념미술은, 형식을 매개로 특권을 부여받을 수밖에 없는, 그리고 동시대 예술이 쟁취해내야 하는 의미와 가능성에 대한 경쟁과 관련되는, 이른바 회화주의(pictorialism)의 인가성에 대한 절대적인 반미학적 입장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이런 면에서 ‘후기개념미술(post-conceptual art)’은 예술의 특정 형식을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다. 오히려 동시대 예술 일반의 생산에 대한 역사적, 존재론적 조건을 지칭하는 것이다.
윗글에서 피터 오스본은, 개념미술, 나아가 후기개념미술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이 둘은 형상적 예술(pictorialism) 일반에 대한 반발적 기류로서 나타난 현상으로서 동시대 작품 생산의 역사적 조건을 지칭하는 개념일 뿐이며, 그 외 다른 어떤 미적 형식이나 철학적 구분을 구유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관점을 제시한 사람이 있다. 나이지리아 출신 큐레이터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 1963-)가 유럽의 모더니티를 슈퍼모더니티(Supermodernity, 탁월성을 강조)로 지칭하고, 아시아의 모더니티를 앤드로모더니티(Andromodernity, 가부장적 질서를 강조)로 명명하며, 이슬람권의 모더니티를 스페시어스모더니티(Speciousmodernity, 허울뿐인 정책을 강조)로 설명한 후 아프리카 모더니티를 애프터모더니티(aftermodernity, 후발적 지위를 강조)라고 명명했다. 이는 각각 문화권이 지닌 모더니티 조건을 브랜드화한 것으로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오쿠이가 모더니티의 지역적 차이를 강조할수록, 오히려 모더니티의 본질은 불변하는 것이며, 모더니티는 여전히 문화에서 우세를 점하는 것은 물론 후기(post-), 대안(alter-), 반복(re-)과 같은 온갖 접두어의 개념을 포괄하면서 하위의 개념에 가둔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모더니즘은 철학적으로 보았을 때도 여전히 끝나지 않았으며, 그것은 역사적ㆍ지역적 조건이라는 외투만을 바꾸어 입었을 뿐이다.
모더니즘과 모더니티에 대해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니며 가장 통찰력 있는 관점을 제시했던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 1965-)의 문장을 살펴보아도 문제의 핵심은 같다.
대안모더니즘(altermodernism)은 이시성(異時性, heterochrony)으로부터 출발하여 무언가를 산출할 수 있게 된 시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즉, 인간의 역사가 복합적 시간성으로 구성된다는 시각으로서, 아방가르드에 대한 향수를 거절하면서도, 혼돈과 복잡성은 긍정하는 시각이다. 그것은 시간을 무한고리 속으로 가두어 석화(石化)시키는 속성(포스트모더니즘)도 아니며, 역사의 선형적 시각(모더니즘)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현재의 모든 차원을 탐험하며, 또 시공의 모든 방향의 선로를 좇는 예술형식을 통해서 드러나는, 지향성 없는 경험의 차원을 긍정하는 것이다.
니콜라 부리오 역시 대안모더니즘을 가리켜, 예술형식의 어떠한 속성이나 특수성으로 특정해서 파악하지 않는다. 니콜라 부리오는 대안모더니즘을 설명하면서, 예술형식의 시대성과 내적 발전도식을 긍정하는 모더니즘의 개념, 그리고 그것을 부정하며 태어난 포스트모더니즘은 무한고리 속에서 순환한다는 개념, 그 둘 사이 어디쯤인가에서 자기를 분명하게 표명해내지 못하는 역사적 징후 정도로 해석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학자들은 온갖 접두어를 붙여서 모더니티를 극복하고, 20세기 중반기의 예술현상과 그 후를 철학적으로 구분하고자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더해질수록 오히려 모더니티의 가공(可恐)할 정신만이 두드러질 뿐이다. 그렇다면 모더니티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모더니티는 피안(other-worldly)의 가치를 지상 세계(this-worldly)의 관점 속에 가둔다. 초자연적 세계를 거부하며 신의 죽음을 선포하면서 형이상학적 가치를 세속화한다. 미국의 신문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은 모더니즘에 대해 알기 쉽게 정의한다. “모더니티의 주된 특징은 초월성에 대한 신념의 상실에 있다. 동시에 모더니티는 일상생활만을 감싸며 초월적 실체에 대한 신념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모더니티 이전의 세계관에서 가장 위대했던 것은 ‘가장 완벽한 존재(ens perfectissimum)’를 상정해낸 것이며, 또한 우주가 위계적 단계로 설정되어 있다는 관념을 형성해낸 사실에 있다. 근대 과학의 역사는, 그것이 신성한 성서보다도 실재에 대해서 훨씬 신뢰할만한 결과를 갖추고 있다고, 설득해온 여정이다. 과학은 근대적 믿음, 즉 모던 페이스(modern faith)라는 말과 같다. 모던 페이스는, 그동안 사람들이 중시했던 체계들, 가령 가치, 의미, 목적, 질, 비가시적인 것(invisible), 상위자(superiors) 등 수직적 차원의 체계에 대해 묵과하면서, 설명할 수 있는 세계만을 실체라고 규정했다. 모던 페이스는 결국 형이상학의 세속화에 다름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모더니티는 현재까지 여전히 유지되며 진행되는 프로젝트이다. 단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사적 조건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그 형식의 외양이 달라 보이더라도 근원적으로 모더니티의 정신은 변하지 않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모던 페이스가 예술계는 어떻게 변모시켰는가? 모더니즘 예술이 지향하는 가치는 순혈주의에 있다. 순혈주의는 정통성(legitimacy)을 따진다. 정통성은 계보학(genealogy)에서의 적장자 계승(primogeniture succession)을 원칙으로 한다. 적장자 계승의 적법성에 대한 원칙과 근거는 매우 철학적이다. 모더니즘 예술은 본질주의(essentialism)라는 초점(focus)에 맞추어 세계를 본다. 본질주의란, 회화는 평면성(flatness)이라는 본질에 부합해야 한다는, 신조이다. 반대로 조각은 물질성(materiality)의 본질의 최종적 대답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모더니즘 예술은 본질주의에 의한 순혈의 적법성과 그것에 수반한 적자상속의 신화성을 연출해냈다. 모더니즘 예술은 철학적 모더니즘과 달리 수직적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가치들의 본원이 무엇이며 어떠한 특질을 지녔는지 실증하는 작업보다 먼저 요구되는 것이 있다. 이러한 가치들이 어째서 형성되고 유지되었는지 그 사상사적 배경을 우선적으로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미셀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중대한 발언을 음미해야 한다.
사상사의 주요 책무는 다음과 같다. 즉, 인류는 그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무엇을 하고, 그들이 사는 세계가 어떠한지에 대한 문제들과 관련된 조건들을 정의하는 것이다.
윗글에서 미셀 푸코는 사상이란 인류가 사는 세계의 조건을 정의하는 작업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모더니티 역시 모더니티가 발생했던 세계의 조건,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그 조건이 무엇인지 먼저 물어야 한다. 앞서 언급되었던 1978년도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의 기사는, 모더니티를 형이상학의 세속화라고 규정하고 있다. 형이상학은 세계의 제1원인을 추론해가는 학문이다. 결국 신성(deity)을 추구한다. 그러나 실체(reality)를 규정하는 일을 과학에게 이양했을 때, 세계의 본질 규명은 거인 과학자의 어깨에 올라타야 했다. 그리고 예술이 모더니티의 신념을 받아들였을 때, 예술은 본질주의의 포커스에 맞추어 세계를 인식해야 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포커스(focus)는 단순히 초점(焦點)만을 뜻하지 않는다. 포커스의 라틴어는 ‘가정의 난로(domestic hearth)’라는 뜻을 지닌다. 그런데 난로의 주인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렸을 때 집안의 불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것이 난로이든지 화로이든지 부뚜막이든지 어린 시절의 불은 꿈 자체이다. 마치 나방처럼 불에 다가서는 우리를 막은 것은 아버지이다. 손을 불 속에 집어넣을 때면 어김없이 막대기로 손을 내리쳤고, 불 속을 향해 뛰쳐 갈 때면 목덜미를 잡았다. 나중에 우리가 자라고 나서 아버지의 성냥을 훔쳐서 야외에 불을 피운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불의 절도는 좌절된 꿈의 보상이기 때문이다. 불을 피우고 우리는 모두 아버지의 불 다루는 솜씨와 나의 솜씨를 비교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Promêtheus)는 아버지 제우스(Zeus)로부터 불을 훔쳐 아버지의 전능함과 자신의 능력을 비교하다 형벌에 처한다. 프로메테우스의 어원은 먼저를 뜻하는 ‘pro-’와 생각하다는 뜻의 ‘mêtis’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는 예술가이며, 예술가는 먼저 생각하는 일에 사활을 건다. 그러나 최초의 조상이자 아버지인 제우스를 넘어설 수 없다. 단지, 적법성과 적자(嫡子)의 조건이라는 이름의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을 뿐이다.
모더니즘 회화는 최초로 평면성의 중요성을 파악해낸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으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우리는 세잔에게 제우스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 우리는 세잔 이후에 고흐를 보며, 고흐 이후에 피카소를 본다. 피카소 이후에 폴록을 보며 폴록 이후에 바넷 뉴먼과 마크 로스코를 본다. 우리는 수많은 회화가를 보게 되지만, 아버지 제우스 없이 태어난 프로메테우스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아무리 앤디 워홀이고 게르하르트 리히터일지언정 아버지 없는 예술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가 이 시간을 통해서 알고자 하는 대상은 서구 모더니티의 기원과 양상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모더니티를 알고자 한다.
앞서 언급되었던 나이지리아 큐레이터 오쿠이 엔위저는 각 대륙의 모더니티에 브랜드를 수여하면서 동아시아의 모더니티를 앤드로모더니티(Andromodernity)라고 명명했다. 안드로(andro-)는 남성을 뜻하는 희랍어 명사 아네르(anēr, ἀνήρ)에서 나왔다. 아네르는 다 자란 성인 남성을 뜻하기도 하면서 남편(husband)을 뜻하기도 한다. 오쿠이 앤위저는, 모더니티가 본래 가부장적 질서의 산물이기도 하거니와 가부장적 질서가 유달리 동아시아에서 심화하여 발전되었던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Ⅱ. 동아시아의 예술 인식과 그 계왕(繼往)으로서의 현대
명대에 항목(項穆, ?-?)이라는 사람이 있다. 16세기 중반 즈음에 태어난 사람이다. 항목은 그의 저서 [서법아언(書法雅言)]을 통해서 문자를 쓰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냐에 따라 문자 형상의 미추와 공졸(工拙)이 나뉘고, 이에 따라 중화(中和)와 광견(狂狷)을 중심으로 다양한 비평적 논의를 시도했다. 열여덟 장으로 이루어진 [서법아언]의 첫 장은 「서통(書統)」이다. 여기서 통(統)이라는 말은 정통(正統)의 계승(legitimate succession)을 뜻한다. 동아시아 문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의제가 바로 계통의 문제이다. 왕위 계승과 국가의 문제에서 정통(正統)이 있고, 유가 도학에서 도통(道統)이 있다. 문장에서 문통(文統)이 있는가 하면, 예술에서는 서예에서 서통(書統)이 있고, 그림에서는 정파론(正派論)이 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사상에서 중요한 통(統)의 문제는 무엇과 관련하는가? 이 문제는 항목의 [서법아언]의 「품격」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품격」 장에서 항목은 정종(正宗) 관념에 대해 논의한다. 정종이란 예술의 최고경지를 뜻한다. 항목은 정종의 예시로 왕희지(王羲之, 307-365)의 글씨를 손꼽는다. 정종은 진선진미(盡善盡美)를 실현한 것을 말하는데, 왕희지가 그 경지에 다가섰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 사항으로 주로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우선 왕희지는 회고통금(會古通今)을 이룬다는 것이다. 즉, “옛날과 지금의 모든 글씨를 섭렵해서 하나로 꾀어낸다.” 둘째, 불격불려(不激不厲)하다는 것이다. 즉, “격하지도 않고 어그러지지도 않는다.” 중화(中和)를 이루었다는 뜻이다. 셋째, 계왕개래(繼往開來)했다는 것이다. 즉, “과거를 이어 미래를 열었다.” 항목은, 맹자가 공자를 평가하며 사용했던 집대성(集大成)이라는 말과 [중용]의 핵심개념인 시중(時中), 주희가 “옛 성인을 이어 미래의 학문을 연다[繼往聖, 開來學].”라고 말했던 부분을, 논의의 중심 개념으로 끌어낸다. 따라서 항목은 과거의 문화적 전범을 통섭하여 현재의 시변(時變)을 모두 고찰해서 미래를 여는 예술을 가리켜 정종이라고 했다.
동아시아에서 이러한 예술 인식은 더욱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북송시대의 시인 강기(姜夔, 1155-1221)는 예술의 지극한 경지는 정신과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을 피력했으며, 원나라의 서예가 성희명(盛熙明, 1281-1347)은, 서예란 마음이 움직이는 흔적이 드러난 것이기에, 마음속에 쌓인 덕의 기운이 손에 의한 운필로 표현되는 예술이라고 정의했다. 시간이 지나 청나라에 오면 유희재(劉熙載, 1813-1881)가 “예술이란 도가 드러난 것이다.”라고 하여 예술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도와 연관 지어 정의했다. 나아가 유희재는 “글씨란 심학(心學)이고, 글자를 옮긴다는 것은 뜻을 옮긴다는 뜻이다.”라고 하여 심화(深化)된 차원의 예술은 심학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동아시아의 예술 인식에서 가장 고차원적 개념은 도(道)와 마음[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와 마음에 대하여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특정하지 못한다. 동아시아의 예술은 주로 다음에 등장하는 세 가지 차원과 관련하여 예술을 인식해왔다.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오직 정밀하고 한결같이 해야만 진실로 그 중을 잡을 것이다.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는데,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 즐겁고 화평한 군자여, 어찌 인재를 기르지 않으리오.
공자께서 냇가에 계실 때 말씀하셨다.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는구나!”
첫 번째 글은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서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전수했다는 심법이다. 우리의 마음은 외물[物]에 쉽게 유혹되어 인심(人心)으로 흐른다. 이를 바르게 붙잡아 도심(道心)의 중(中)을 유지해야 한다. 동아시아의 예술은 외물에 흔들리지 않는 도심을 얻는 여정 속에서 꽃피웠다. 두 번째 글은 [시경(詩經)]에 수록되어 있는 「한록(旱麓)」이라는 시로서, 하늘에 솔개가 날고 물속에 고기가 뛰어노는 것이 자연스럽고 조화로운데, 이는 솔개와 물고기가 저마다 나름의 타고난 길을 가기 때문이라는 세계의 진리를 상징하고 있다. 인간의 길 역시 타고난 길을 가야하며, 그 길이란 바로 도심을 찾는 과정이다. 세 번째 글은 [논어(論語)] 「자한(子罕)」 편에서 공자가 흐르는 냇가 위에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탄식한 장면이다. 누가 냇물을 쉬지 않고 흐르게 하는지 몰라도 그것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자연, 나아가 우주에 성(誠)이 있다면, 우리의 본성에도 성(誠)이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예술가들은 이 세 가지를 기억하며 창작에 임했다.
따라서 당대(唐代)의 장회관(張懷瓘, ?-?)은 “글씨를 깊이 아는 사람은 신채(神采)만을 보지 글자의 형태[字形]을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으며, 동진(東晉) 시대의 왕희지는 “천태자진(天台紫眞) 선생께서 내게 말씀해주셨다. ‘그대가 비록 지극할지라도 아직 완선(完善)에 이르지 못했다네. 글의 기운이란 반드시 도(道)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것은 혼원의 이치와 같은 것이라네.’”라고 말했다. 이 두 사람의 논의는 한대(漢代)로 거슬러가 양웅(揚雄, 53B.C.-18A.D.)이 “글씨란 마음의 그림이다.”라고 말했던 심화(心畫)라는 개념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말이란 그 마음에 통달할 수 없고, 글이란 그 말에 통달할 수 없으니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오로지 성인만이 말의 깨침을 얻고 글의 요체를 얻는다. 밝은 태양에 비추고 강물에 씻은 것 마냥 밝고 맑아서 성인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얼굴을 서로 대하고, 말로써 서로 대적하여 마음속에서 서로 하고자 하는 바를 이리저리 굴려서, 여러 사람의 떠들썩한 분노를 통하는 것은 말과 같은 것이 없다. 천하의 일을 두루 다스리고, 오래된 것을 기록하고, 먼 것을 밝힘에 오랜 옛적의 흐린 것을 현저하게 드러내고, 천 리의 사리에 어두운 것을 전하는 것은 글만 한 것이 없다. 그리하여 말은 마음의 소리이고 글은 마음의 그림이다. 소리와 그림이 밖으로 나타나면 군자와 소인이 보이는 것이다. 소리와 그림이라는 것은 군자와 소인의 정(情)을 움직이는 까닭이기 때문이리라.
윗글에서 양웅은 말[言]을 심성(心聲)이라 규정하고 글[書]을 심화(心畫)로 규정하면서 최종적으로 군자와 소인의 학식 여부, 정감표현의 적절성, 판단력, 인품의 고하(高下)로써 서여기인(書如其人) 내지 서류기인(書類其人)의 결론에 이른다. 글과 그림은 마음의 표현이며, 이는 그 사람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의 예술은 곧 그 사람의 인품 그 자체를 판단하는 표지(標識)에 다름 아니다. 즉, 동아시아의 예술에 대한 사유는 구체적으로 형으로 드러난 소연(所然)의 세계보다도 행간에 숨어있는 근원적 원리, 즉 도리의 원천으로서의 소이연(所以然)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요구했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예술 인식은 조선조에도 반영되어,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1541-1596),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의 예술 인식과 정확하게 부합된다.
이상으로 보았을 때 동아시아 예술은 세 가지 중심사유로 발전해왔다. 동아시아의 예술 사유는 첫째, 1) 계통의 성립을 중시했다. 즉, 서통(書統)이나 정파(正派)와 같은 정종(正宗) 의식을 매우 중시했다. 정종의 자격은 회고통금(會古通今)하여 계왕개래(繼往開來)하는 작가에게 수여된다. 둘째, 2) 동아시아의 예술은 심학(心學)의 예술이다. 심학의 예술은 도리[道]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이다. 주로 요순(堯舜) 사이에 오갔던 16자 심법과 관련되며, [중용]의 시중(時中), [시경]의 연비어약(鳶飛魚躍), 공자의 서자여사부(逝者如斯夫)의 진리를 체화하는 과정과 관련된다. 셋째, 3) 글씨, 또는 그림은 마음의 그림이어야 한다. 그림은 그것을 그린 사람의 모든 수준, 판단력, 학식, 인품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울이다. 따라서 그림은 그 사람 자체이다. 이 세 가지 중심사유는 서구 모더니티에서 요구하는 1) 계통 의식, 2) 평면성을 찾아 나아가는 본질주의의 철학성, 3) 스타일(style)은 그 사람 자체라는 논의와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한국 모더니즘 회화는 서구 이념의 단순한 이식이 아니라, 유구하게 흘러서 우리에게 체화되었던 예술 인식의 현대화라고 볼 수 있다. 이에 최명영(崔明永, 1941-) 작가는 통찰력 있는 혜안을 제시한다.
미국의 미니멀리즘은 지향성, 즉 작가가 세계에 자신을 표명하는 태도(attitude)를 중시한 것입니다. 일본의 모노하는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relation), 나아가 나와 사물 사이의 관계를 조응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단색화는 과정(process)의 통찰 속에서 작품이 탄생합니다. 과정은 사유이면서 수양입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프로젝트입니다. 자신을 화면에 일치시켜 사람과 그림이 둘이 아니라는 진리를 얻으려는 치열한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정신과 도리[道]가 모두 잉태됩니다.
최명영 작가는 미국과 일본, 우리나라가 공유하고 있는 평면적 물성 회화의 행간에 자리하고 있는 본질적 차이에 대해서 간명하게 요약해준다. 본질적 차이는 정신성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미니멀리즘 미술은 1959년에 태동한 것으로 파악되지만, 1966년 뉴욕의 유대미술관(Jewish Museum)에서 열린 「기초적 구조(Primary Structures: Younger American and British Sculpture)」라는 전시회가 앞으로 미술사를 잠식할 미니멀리즘의 전면적 신호탄이 된다.
이 전시회에는 주디 시카고(Judy Chicago, 1939-), 피터 포라키스(Peter Forakis, 1927-2009), 댄 플래빈(Dan Flavin, 1933-1996),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 1923-2015), 리처드 반 뷰런(Richard Van Buren, 1937-), 아이삭 위트킨(Isaac Witkin, 1936-2006), 칼 안드레(Carl Andre, 1935-), 마이클 볼러스(Michael Bolus, 1934-2013),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 로널드 블레이든(Ronald Bladen, 1918-1988) 등이 참여했다. 이론가 힐튼 크레이머(Hilton Kramer, 1928-2012)는 이 전시회에 대하여 뉴욕 타임즈에 세 차례 이상 기고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미학은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발언했다. 미국 최고의 큐레이터로 평가받는 키너스톤 맥샤인(Kynaston McShine, 1935-2018)은 이 전시회를 가리켜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전시회는 당대 최고의 미술사가 마이어 샤피로(Meyer Schapiro, 1904-1996) 역시 기획자로 참여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미니멀리즘은 가장 기초적 구조(primary structures)를 찾아서 전대와 완전히 절연하여 새로운 미학을 창출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조직적인 기획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전시회로부터 이론가이자 작가인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1931-2018)는 반복적으로 양산되는 미니멀리즘의 작품들을 바라보면서, 미니멀리즘 작품이 여타 다른 작품과 구별되는 특성을 가리켜서 미니멀리즘이 지닌 ‘연쇄성(seriality)’이라고 진단했다. 반복적 패턴의 사용, 공정 시스템을 도입해서 작품을 양산하는 방식이 바로 연쇄성이라는 것이다. 1966년 즈음에 화단의 주류가 되었던 도널드 저드는 자기 작품 세계의 특징을 가리켜 연쇄적 태도(serial attitude)라고 불렀다. 미니멀리즘의 본령은, 최명영 작가의 말 그대로, 세계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다. 이로써 최명영 작가의 혜안은 입증된다.
일본의 모노하(もの派, Mono-ha)의 경우 1970년 2월 「발언하는 신인들: 비예술의 지평으로부터(Voices of Emerging Artists: From the Realm of Non-Art)」라는 전시회에서 전기를 맞이한다. 야외의 설치작품과 건물 안의 설치작품으로 구성되었던 이 전시회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날것과 산업재료, 가령, 캔버스, 숯, 면화, 먼지, 와시(和紙), 기름, 밧줄, 돌, 나무토막, 유리판, 전구, 플라스틱, 고무, 강철판, 합성 쿠션, 와이어 등을 바닥에 직접 놓아두는 방식으로 기존의 전시와 차별점을 두었으며, 전시가 진행되는 건축, 환경과의 상호작용적 관계성(relationship)에 기반을 두었다. 이 초기 전시회는 2013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블럼 앤 포(Blum & Poe)에서 「태양을 위한 진혼곡(Requiem for the Sun: The Art of Mono-ha)」이라는 제목으로 재현되었다. 제목은 대상(物, object)이 지닌 영원성과 영속성의 상징체인 태양의 죽음을 천명하면서, 대상에 함축된 영속성과의 단절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일 안보조약(the U.S.-Japan Security Treaty), 반베트남전 운동, 석유파동 등 당대 작가가 처한 내외적 현실에 대해서 자기의 현실적 순간으로부터 역사적 계기를 살펴야 한다는 모호한 제스처의 저항 정신이었다.
요시다케 미카(Mika Yoshitake) 선생은 모노하를 분석하면서 여타 미술운동과의 차별점에 대해 논의한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전통적 일본 사유와도 절연했으며, 또 아르테포베라(Arte Povera)나 미니멀리즘과 달리 스스로 운동을 정의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그 첫 번째 분석이다. 또 모노하는, 1973년 즈음에 비평가들에 의해서 산발적이었던 현상이 회고적으로 종합되면서, 명명된 이름이라는 것이다. 요시다케 미카에 의하면, 전후인 1950년대 요시하라 지로(吉原治良, 1905-1972)에 의해 설립되었던 행동 기반적 예술단체 구타이(具體, Gutai)와도 구별되는데, 구타이는 손에 잡히는 감각적 물질(物質, busshitsu)과 인간의 정신을 동일화시켰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이에 반해 모노하는 물질과 조응하면서 생기는 감수성을 구어로 표현해낸다고 분석한다. 가령, 두근거리고(どきっと, heart stopping), 떨리며(ぞくっと, spine-chilling), 황홀한(しびれる, thrilling) 감각을 사물과 환경 속의 관계 속에서 구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요시다케 미카는, 모노하의 영수(領袖)인 이우환(李禹煥, 1936-) 작가가 세키네 노부오(関根伸夫, 1942-2019)의 자유 상태의 개념을 끌어냈다는 점에 대해서도 논증하고 있다. 자유 상태는 대상의 본질적 상태를 드러내는 국면이기에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모노(もの)는 대상의 형식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며,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구조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노(もの)는 물(物)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요시다케 미카는, 모노가 하나의 국면(局面, phrase)이며, 중재(intermediary)라는 점을 강조한다. 모노는 관람자와 대상 사이에서 모종의 통로(passage)를 설정해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철저하게 환경과 사물과의 관계로써 그 이념이 정립되고 있다. 진정으로 모노하는 관계적 미학 속에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로써 최명영 작가의 두 번째 가정 역시 사실로 증명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단색화는 이와는 다른 논의를 구축하고 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단색화는 모더니티와 동아시아의 전통적 예술 인식의 종합체이다. 모더니즘 회화가 회화의 본질을 묻는 과정의 역사라면, 동아시아의 예술 인식은 마음[心]의 본질을 찾아가는 철학적 사유에서 태어났다. 그렇다면 한국의 모더니즘 회화의 역사는 심학(心學)의 현대적 형식의 창조적 확립을 향해 묵묵히 걸어왔던 역사라고 정의할 수 있다. 마음은 도심(道心), 즉 도덕적 자기 확정성의 확신을 말하는 것이며, 예술은 이 중차대한 정신적 문제의 증험으로서만이 의미가 있을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금 기억해야 한다. 2,500년 동안 16자 심법의 진리를 예술형식으로써 외재화하려는 장구한 역사를 갖고 있고, 그 역사는 현재 지금도 진행 중이다. 따라서 모더니티의 철학이 이처럼 고도화된 유례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세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모더니티는 전통과의 단절을 요구한다. 그러나 만날 수 없는 모더니티와 전통문화의 운명은 우리나라에서 절묘하게 화합한다. 가령, 모더니티 시인 김수영(金洙暎, 1921-1968)의 시 「공자의 생활난」에서 ‘마카로니’와 “조문도, 석가사의(朝聞道, 夕可死矣).”는 절묘하게 화합한다. 박수근(朴壽根, 1914-1965)의 회화에서 어머니(여성)의 고난은 견고한 남성성의 화강석의 마티에르와 만난다. 이응로(李應魯, 1904-1989)의 회화에서 수천 년간 누적되었던 서예사는 형식주의 미학과 만나 모더니티의 극치를 얻는다. 한국 모더니티 속에는 불가사의한 힘이 숨어있다.
Ⅲ. ‘화이트’와 ‘素’의 의미 구별과 그것을 체현한 작가들
우리는 어째서 흰색(white)을 사용했는가? 그러나 흰색이라는 한 단어로 ‘소(素)’라는 표현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소(素)’에는 ‘본디’, ‘바탕’, ‘꾸미거나 덧붙이지 아니한 것’, ‘정성(精誠)’, ‘희다’, ‘질박하다’, ‘분수를 지키다’ 등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후한시대에 허신(許信, 58?-147?)이 편찬한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소(素)’자에 대해 “소(素)는 흰 비단이라는 뜻이다. 멱과 수로 구성되었다. 그 광택을 취한 것이다. 소부(素部)에 속하는 모든 한자는 소(素)의 의미를 따른다.”라고 설명한다. 허신은 ‘소(素)’의 본원이 흰 비단이라고 설명한다. 아무것도 가공되지 않은 상태의 비단이다. 따라서 귀하고 고결한 옷감이지만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상태를 가리켜 ‘소(素)’라고 한다. 후한 시대의 대표적 유학자 정현(鄭玄, 127-200)은 [예기(禮記)]의 「잡기(雜器)」를 해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는 가공하지 않은 비단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가공하지 않은 비단을 ‘소(素)’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비단을 삶아서 다듬어 놓은 것을 ‘련(練)’이라고 하는 것과 대비하여 말한 것이다. 모든 흰색은 색깔이 하얗기 때문에 ‘소(素)’라고 부르게 되었다. 흰색은 다른 채색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모든 사물의 바탕을 ‘소(素)’라고 한다. 예를 들어, ‘각(殼)’자의 아래에서 “일설에는 바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라고 한 것이 그러한 예이다. 바탕으로 아직 무늬가 더해지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길 ‘소식(素食)’이라든가 ‘소왕(素王)’이라는 말이 있다. [시경]의 「벌단(伐檀)」을 [모전(毛傳)]에서는 “소는 비어있다[空]는 뜻이다.”라고 해석했다.
허신과 정현 모두 가공하지 않은 천연의 고귀함을 ‘소(素)’라고 정의하고 있다. 특히 정현은 그것을 가리켜 모든 사물의 바탕이라고 설명한다. 소식(素食)은 소탈하지만, 건강에 좋은 식사이며, 소왕(素王)은 지금 왕이 아니더라도 왕의 덕성을 갖추었기에 언젠가 왕이 될 사람을 가리킨다. 따라서 ‘소(素)’는 현실의 사태보다 앞으로 일어날 무한한 가능성의 뜻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조상들은 이미 세련(洗練)되고 정선(精選)된 인위의 ‘련(練)’의 세계보다 아직 손이 가지 않은 ‘소(素)’의 세계를 상찬했다. ‘소(素)’는 비어있는 ‘공(空)’자와 뜻이 통한다. 비움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는 경지를 가리킨다.
주대의 초나라 갈관자(鶡冠子)라는 사람이 지었다는 [갈관자(鶡冠子)]의 「학문(學問)」 편에도 ‘소(素)’자가 나온다. 갈관자는 “도덕이란 행동거지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소(素)’는 근본, 즉 무언가 사물이나 사태의 본질을 뜻한다. [한비자(韓非子)]에서는 “군주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버리면 신하는 진정성을 드러낼 것이고, 신하가 진정성을 보이면 군주는 폐단이 없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여기서 ‘소(素)’는 본마음[本心], 즉 진정성을 뜻한다. [노자(老子)] 19장에는 “소박한 것을 찾아서 지니고 삿된 것을 적게 하고 욕심을 줄여야 한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여기서 ‘소(素)’는 소박한 것, 소탈한 것을 뜻한다. [회남자(淮南子)]에서도 “그 마음은 온화하여 속이는 행위는 하지 않았고, 일하는 데에서는 소박하여 꾸밈이 없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역시 소박하다는 뜻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희공(僖公) 28년 기사에 “그들(초나라 군사)은 평소처럼 배불리 먹었으니 결코 지쳤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라는 구절이 보인다. 여기서 ‘소(素)’는 평소라는 뜻을 지닌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생활의 시간을 뜻한다. [시경]의 「벌단(伐檀)」에서 “저 군자는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소(素)’는 비어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사기(史記)]에도 미리 혹은 사전에라는 뜻을 지닌 ‘소(素)’가 등장한다. “물자가 미리 갖춰지지 않으면 군사를 감당할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동파(東坡) 소식(蘇軾, 1037-1101)은 「여산(廬山)을 여행하고 적다」라는 시에서 “푸른 산은 옛적의 정감과 달라서 아득히 높아 가기 쉽지가 않구나.”라며 노래한다. 이 시에 등장하는 ‘소(素)’는 옛 정감을 뜻한다. 정리하면 ‘소(素)’는 1) 가공되지 않은 천연의 고귀함, 2) 무한한 가능성, 3) 근원적인 것, 4) 진정성, 5) 세속을 떠나 소탈한 것, 6) 평소 일상 속에 숨어있는 진실, 7) 비어있음 8) 미리 준비해두는 정신, 9)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일관된 정취를 뜻한다. 따라서 우리가 장구한 역사에 걸쳐 흰색을 사랑했던 것은 이러한 철학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번 전시회는 1975년에 일본 도쿄 갤러리(東京畫廊)에서 열렸던 전시회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 전」, 일명 「흰색(Hinsek) 展」의 미학과 정신을 실존적 입장에서 재정리한 성격을 지닌다. 1975년도 전시에서 미술비평가 이일(李逸, 1932-1997)은 “한마디로 白色(백색)은 스스로를 具顯(구현)하는 모든 可能性(가능성)의 生成(생성)의 마당이다.……우리의 畵家(화가)들에게 있어 白色모노코롬은 차라리 세계를 받아들이는 비전의 제시다.” 이일 선생 역시 흰색을 모든 가능성과 새로운 생성의 토대로서 그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세계를 수용하는 총체적 비전의 유래처로 파악하고 있다. 이 전시회의 제목 「흰색(Hinsek)」의 명명자는 이우환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 전시회에 참여한 다섯 작가는 권영우(權寧禹, 1926-2013), 박서보(朴栖甫, 1931-), 서승원(徐承元, 1942-), 이동엽(李東燁, 1946-2013), 허황(許榥, 1946-)이다. 데이트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 「흰빛의 마음: 한국 모더니즘 회화의 재구성」에서는 「흰색(Hinsek) 展」에 참여했던 권영우, 이동엽 선생의 작품이 출품된다. 아울러 윤명로(尹明老, 1936-), 최명영(崔明永, 1941-), 심문섭(沈文燮, 1943-), 최병소(崔秉昭, 1943-), 이교준(李敎俊, 1955-), 박종규(朴鍾圭, 1966-), 윤상렬(尹祥烈, 1970-) 작가가 참여한다.
권영우 작가는 생전에 “조물주는 만물을 만들었지만 이름은 붙이지 않았습니다. 자연 그 자체가 곧 추상인 셈이지요. 저는 단지 자연의 여러 현상에서 발견하고, 선택하고, 이를 다시 고치고 보탤 뿐입니다.”라고 발언했다. 단지 손톱 등으로 찢고 뚫고 붙일 뿐이었다. 가공되지 않은 한지는 일상의 반복적 행위를 통해 예술의 근원성을 드러낸다.
이동엽 작가는 단색화 제1세대 작가에 속한다. 색과 형태의 지극한 절제를 통해 고유한 아름다움의 형식을 확립했다. 작가의 그림에서 두드러지는 여백의 공간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극도의 비움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느끼게 해주며, 안정이 주는 고요한 시각적 서사는 일상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준다. 작가는 동양화에 사용되는 넓은 붓을 사용하여 흰색 바탕 위에 흰색과 잿빛의 선을 반복하여 마음의 근원을 찾아간다. 작가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는 흰색의 소탈함을 빌어 자연의 본원을 제시한다는 작가의 지향성이 담겨있다.
윤명로 작가는 서구인의 붓 터치보다 동아시아의 준법을 모더니티 회화로 변용했다. 동아시아의 준법은 심화(心畵)를 체현시키기 위한 기본요소이자 그 자체로 간단없는 수양이다. 윤명로 작가는 1960년대 앵포르멜 미술을 받아들이다 극적인 변혁을 꾀했다. 1970년대 「균열」 연작, 1980년대 「얼레짓」 연작, 1990년대 「익명의 땅」 연작, 2000년대 「겸재예찬」, 2010년대 「바람 부는 날」 등 10년 주기로 전혀 다른 내용과 형상의 회화연작을 제시하면서 놀라운 예술적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대자연 속에서 인간 삶의 진실한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던 윤명로 작가의 모든 회화세계 속에서 일관되게 유지되는 원칙이 있다. 윤명로 작가에게, 대자연은 ‘나’라는 의식의 거대하고도 오묘한 성찰의 장(場)이며, ‘나’는 ‘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그곳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거니와 그곳은 ‘나’를 내성(內聖)으로 안내하는 연원이다.
최명영 작가 역시 단색화 제1세대의 대표적 작가이다. 작가가 평생 일관되게 추진했던 작업은 회화가 지니는 철학적 본질인 ‘평면조건(conditional planes)’을 얻어가는 과정에 있다. 작가는 “홍익대 미대 재학 당시 이규상 교수의 ‘평면에 대한 작가 의지의 중요성’, 그 후 김환기 교수의 ‘작업에 임하는 지속적인 수행 자세’에 대한 교훈적 지적의 영향이 크다. 나의 인성(人性) 특성상 사상의 근본을 많이 생각하는 성향인데 이것이 회화의 본질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발언한다. 최명영 작가는 근본, 본질을 추구하는 바에서 모더니티의 추동력인 본질주의의 요소를 살필 수 있다. 그리고 인성과 예술이 서로 둘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동아시아 심화(心畫)로서의 전통적 사유와도 길을 함께한다.
심문섭 작가는 197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현전’, ‘토상’, ‘목신’을 거쳐 ‘메타포’, ‘제시’ 연작을 통해 작품의 소재가 되는 나무ㆍ돌ㆍ흙ㆍ철 등의 물질에서 비물질적 정신성을 드러내려는 의지를 표명해왔다. 그러나 프랑스에 체류하면서 물리적 조건의 한계를 넘고자 회화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흰색 유성 물감의 바탕에 푸른 수성 물감을 반복적으로 입혀가는 과정은 일상의 모든 순간을 경(敬)으로 대하는 수행자의 자세를 현현하는 것이거니와 파도를 연상시키는 푸름은 자연과 내가 하나라는 사유가 담겨있다. 하나 됨(oneness)은 전체(whole)라는 개념을 지향하며 신성(holy)과도 같은 어원을 공유한다.
최병소 작가는 근세와 근대를 가르는 상징적 매체 신문지를 흑연과 검은 볼펜으로 칠해서 신문이라는 물질을 기적적으로 형질변경시킨다. 온갖 정보로 가득한 신문지의 시끄러움은 그것은 적막무짐(寂寞無朕)한 고요로 침잠된다. 적막한 그림자와 같은 작가의 작품은 새로운 가능성을 일으키는 전기(轉起, arising)의 세계이기도 하다. 과잉 정보적 세계(world as abundant)가 의미로 충만한 계기(informative moment)로 역전되는 현상은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오로지 최병소의 예술 속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교준(李敎俊, 1955-) 작가는 기하학적 추상회화에 천착해왔다. 1970년대부터 아방가르드 정신을 추구했으며, 합판, 금속판과 같은 산업자재의 물성을 극한으로 추구했다. 이후 작가는 아크릴 물감과 유화 등 전통적 회화 창작 방법으로 수평 이미지와 수직 이미지를 그렸다. 수평 이미지와 수직 이미지가 교차하여 분할된 사각형은 절대 공간(absolute space)을 상징한다. 이교준의 절대 공간은 시간과 질료를 넘어서는 물리적 본원이거니와 시공간, 물질을 넘는 정신을 상징하며 소이연(所以然)으로서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박종규 작가는 거듭되는 변증법 속에서 가장 질서 있는 세계를 구축해낸다. 첫째, 미디어 매체와 회화와의 변증법적 투쟁이 그 시작이다. 회화는 인류 최초의 마술이었다. 마술은 사람들을 현실과 구분할 수 없게 했다. 마술을 비판하기 위해서 문자를 개발했다. 문자는 사람에게 이성적 사고를 선사했다. 문자는 컴퓨터로 진화했다. 따라서 컴퓨터 이미지와 회화는 본질에서 다르다. 작가는 이를 극적으로 통섭한다. 둘째, 컴퓨터 이미지 중에서도 노이즈 이미지를 사용한다. 노이즈 이미지를 확대하면 정상적 이미지의 확대 장면과 차이가 없다. 보기 좋은 것과 보기 싫은 것의 본원은 같다는 역설을 회화 작업에 구축한다. 박종규 작가는 위계적 사고, 불평등, 소외의 문제를 뉴페인팅의 방법론으로 극복하고 있으며, 우리 시대의 정신은 다층적 실체(multi-layered reality)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한다.
윤상렬 작가는 종이와 필름 위를 샤프심으로 그어 수많은 마루(crest)와 골(trough)이 경이적인 규칙을 만든다. 그 위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프린터가 선을 바른다. 가령, 0.3mm, 혹은 0.05mm의 선을 만들고, 그리고 그 선에 블랙 93%, 혹은 브라운 77% 등의 농담을 주어 수많은 선과 색채를 배합하여 마루와 골에 신비한 깊이의 심연을 만든다. 이 색채의 규칙적인 높낮이에서 말할 수 없는 경이가 펼쳐진다. 본질적으로 지대한 노동과 컴퓨터가 함께 연출한 드로잉이지만, 어떤 회화보다 깊이 있는 회화성을 구현한다.
우리는 앞서 ‘소(素)’의 역사적 용례를 파악하면서, ‘소(素)’ 속에는 1) 가공되지 않은 천연의 고귀함, 2) 무한한 가능성, 3) 근원적인 것, 4) 진정성, 5) 세속을 떠나 소탈한 것, 6) 평소 일상 속에 숨어있는 진실, 7) 비어있음, 8) 미리 준비해두는 정신, 9)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일관된 정취 등 대략 아홉 가지 의미가 내재하여 있음을 보았다. 모든 현상을 소연(所然)이라고 한다. 현상 너머에 있는 의미, 현상의 내재적 원인을 소이연(所以然)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소(素)’는 물질적 현상으로서 드러나는 소연의 화이트(white)를 가능하게 하는 소이연이다. 우리가 만나는 아홉 작가의 화이트 속에 내재된 ‘소(素)’의 의미를 읽어야 이번 전시의 진정한 감상이 이루어진다. 나아가 우리나라 모더니즘 회화는 장구한 시간 동안 축적되어온 우리의 예술 인식의 발로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이진명(李振銘), 미술비평ㆍ미학ㆍ동양학, 2022년 2월 4일